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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Sep 11. 2015

'담당자' 찾기 숨바꼭질.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는 덤.


잡지 IXDesign(아이엑스디자인)에 IoT 라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관련한 기술, 제품, 프로젝트 등을 소개하는 코너라 아무래도 여러 업체와 접촉하게 된다. 수십, 수백 개의 업체와 접촉하면서 늘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기사를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한국 업체의 제품을 많이 소개하지 못 하고 있고, 이 점이 나는 굉장히 아쉽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 벤처 기업과 스타트업의 제품 중에도 분명 훌륭한 제품, 훌륭한 기술들이 많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 하는 것은 그들과 접촉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작은 스타트업부터 굴지의 대기업까지, 한국 업체들과는 정말이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에 외국 기업들은 그 규모와 상관없이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덕분에 좋은 제품과 그에 맞는 좋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말로 하는 전화통화보다 영어로 보내는 이메일에 더 마음이 편하고 실제로 결과도 좋다. 이에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기업인 L사의 제품을 소개하고자 L사의 홍보팀 혹은 마케팅 부서와 접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의 홈페이지에서는 어떤 연락처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대표 번호로 전화해 마케팅 부서로 연결했다. 이후로는 통화하는 사람마다 담당자가 아니라며 전화를 돌리기를 반복하더니 돌고 돌던 전화가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다. 똑같은 상황을 몇 차례 반복하다 결국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에 미국에 있는 L사의 지사에 연락했고 그곳의 직원과는 아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2. P사의 한국 지사와 통화하고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이메일을 보냈지만 틀린 주소라며 반송되어 왔다. 다행히도 이전에 통화한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P사로 다시 전화해 그 이름으로 담당자를 찾자 그 이름은 다른 사람이지만 통화한 사람은 자신이라며 다시 얘기하라고 했다. 이름이 다른 것은 이전에 내가 잘 못 받아적은 탓인데, 재밌는 건 당시에 통화하면서도 내가 잘 못 받아적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메일 주소가 틀렸다고 말하니 그러면 담당자에게 연결하겠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고,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해서 담당자를 연결해달라고 했고,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자신이 담당자가 아니니 다른 담당자에게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담당자와는 통화하지 못 했다. 여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더는 지체할 수는 없기에 이번에는 P사의 SNS 계정을 통해 본사와 연락했다. 답변이 오기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다음 날 한국 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놀라운 건, 이번에 내게 전화를 건 인물은 앞서 등장한 수많은 담당자 중 그 누구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3. 미국 A사의 한국지사는 반면에 아주 놀라운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담당자가 있겠지만 내가 처음 전화를 통해 연결했던 그 담당자가 모든 걸 '실제로' 담당한다. 아직도 그녀와 쉽게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최신 제품이나 최신 기술에 대해 기술자료를 이메일로 요청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자료가 상세히 도착한다. 다른 누구에게도 전화를 돌리지 않고, 당장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곧장 다시 연락을 준다. 심지어 요청한 자료가 없으면 이른 시일 안에 자료를 새로 제작해서 보내준다.


4. 캐나다의 C사와 처음 연락을 했을 때, 그들은 홍보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며칠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기다렸고 며칠 후 완벽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수준의 자료가 도착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놀란 내게 그들은 더 빨리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홍보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수를 사과했다. 내가 사과를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 친절한 태도는  감동적이었다.


5. 이탈리아의 A사는 아주 작은 회사다. 개발자 몇 명이 전부인 회사라 언론에 응대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들은 홈페이지에 미리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홍보자료를 업로드해두었다. 자료들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 따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다른 자료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약간의 요령이 생겼다. 업체가 한국 기업이든 아니든 왠만하면 처음부터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지사로 연락한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한국 제품에 대해 대화하기가 너무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외국의 스타트업들은 나와 같은 언론의 요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보도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그럼 그들 입장에서도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고 나 같은 에디터 입장에서도 편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락처를 기재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실제 담당자'와 직접 연락할 수 있다. 뭐가 다른 걸까. 뭐가 문제일까.


이런 일이 하루 이틀, 한두 차례가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문제이다. 무엇보다 한국 업체에서는 담당자를 찾을 수 없다. 전화 통화하는 대부분 이들은 자신이 담당자가 아니라며 다른 담당자를 연결해주지만 결국 담당자는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어디서 담당자를 찾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따금 담장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과 연결이 될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열에 아홉은 자신에게 권한이 없어 답변할 수 없다고 하거나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는 연락이 없다. 연락처가 없거나 담당자가 없거나 권한이 없거나 어쨌든 거긴 뭔가 없다.


또 많은 경우 홍보대행업체를 통해 언론을 응대한다. 본사 직원의 업무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언론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 생각이다. 덕분에 원하는 정보에 다가가기 위한 경로에 단계가 하나 증가했지만, 최종적으로 결과가 좋다면 괜찮다. 환영한다. 문제는 그 회사가 어느 홍보대행업체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홍보대행업체를 쓰고 있으면 제발 거기가 어딘지 좀 알려달라. 그 정도는 담당자가 아니어도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잘 나가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잘 팔리고 알아서 좋은 기사를 써줄 사람은 많을 테니 나 같은 한낱 잡지 에디터가 쓰는 기사 따위 없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이미 언론 홍보를 위해, SNS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하기 위해, 파워 블로거와 리뷰어라는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을 쓰는지 잘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일이다. 담당하지 않는 담당자가 응당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외주를 주면서 또 돈을 쓰는 것이다. 헛돈과 헛노력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그럴듯한 명목들이 있기 마련이고 요새는 소셜마케팅, 바이럴마케팅이라는 명목이 추가됐다.


어쩌면 보다 본질적으로 기업문화에서 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원에게 책임만 주고 권한은 주지 않는 문화. 온갖 책임을 직원에게 떠넘기는 것도 문제,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직원도 문제, 책임은 없지만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 책임자도 문제, 온통 문제다. 또 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몰라도 문제, 알아도 문제다. 지금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는 것이 처음도 아닐 것이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적만 하고 해결법이나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도 역시 처음은 아닐 테지만, 나는 마케팅 담당자가 아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이게 내 한계다.


기레기라는 말도 있고, 기자라는 허울로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기사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허위로 과장된 기사를 쓰기도 하고 속칭 '빨아주는' 기사를 쓰는 이들도 있다는 걸 안다. 엉터리 언론을 상대하는 에너지가 아깝겠지만, 그 에너지를 아껴서 뭘 더 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그냥 이왕이면 모두가 담당자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에게 책임과 권한이 골고루 있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담당자를 찾는 일이 이렇게 숨바꼭질 같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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