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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Sep 16. 2015

누가 독서를 재미없게 만들었나.

어른들을 혼내야 한다.

독서와 학습



독서와 학습은 같은 말이 아니다.


독서는 유희에 가깝다. 정보를 얻기 위해 사전을 보거나 교과서를 보거나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것을 우리는 독서라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독서란 스토리를 읽어가는 행위다. 소설이나 희곡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인문학 서적 심지어 자기계발서도 '쓰여진'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행위다. 다시 말해 독서는 가공된 스토리를 따라 현실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에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행위를 부르는 다른 말을 알고 있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유희',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놀이'가 그것이다. 


그렇다, 독서는 사실 놀이의 일종인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그 놀이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독서가 즉, 놀이가 재밌다면 아이들은 읽지 말라고 말려도 기어이 읽는다.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 놀이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은 놀이와 학습을 등치 하려고 하는 어른들의 오만에서 비롯된다. 놀이는 학습이 아니다. 놀이를 또 독서를 학습의 수단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학습효과가 있지만 학습으로 놀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내가 어릴 적에는 책 읽는 것처럼 재밌는 놀이가 없었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만큼이나 나는 집에서 혹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재밌었다. 쥘 베른의 이야기를 따라 깊은 바다를 항해했고 땅 속의 숨겨진 세상을 즐겁게 탐험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떠올라 괜히 마음 깊이 행복해진다.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철학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길을 잃는 것도 모두 즐거운 일이다. 즐겁지 않으면 놀이가 아니고, 놀이가 아니면 독서가 아니다.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안경이 쓰고 싶어서 일부러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야 눈이 나빠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밌게, 놀아야, 배운다.


학습이 즐거워지면 놀이가 된다? 많은 어른들이 이 명제의 환상에 빠져 학습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학습이라는 목표, 머리에 지식과 정보를 새겨 넣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는한 학습은 즐거울 수 없다. 놀이는 목표가 없어야 한다. 있다면 놀이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학습이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목표를 없애는 것뿐이다. 목표가 없는 학습은 그래서 즐겁다. 내가 록 밴드에 빠져 밴드의 역사와 락의 역사를 줄줄이 외워버리면서도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내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라는 밴드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들의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들었고 밴드의 역사는 물론 멤버의 개인사, 밴드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 그 평가에 등장하는 록 음악의 역사와 나아가 밴드가 갖는 역사적 의미까지 모든 것이 궁금했고 다 찾아 읽었다. 당시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읽었지만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아, 노래 가사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고 밴드에 대한 설명은 외국 홈페이지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놀았고, 어쩌다보니 영어'도' 배웠다.


나는 많은 것들을 수업시간 칠판이나 교과서가 아닌 독서를 통해 배웠다. 내가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재미있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그리고 좋은 책은 분명히 재밌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좋은 책이라면 분명히 재밌다. 다시 말하자면, 재밌지 않다면 좋은 책이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재밌어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재미없는 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이를 혼내기 전에 재미없는 책을 만드는 그리고 그런 책만 고르는 어른들을 혼내야 한다. 


책이 재미있으면 읽지 말라고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려도 읽는다.


재미없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평범한 책이 재미없는 책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쓰는 것이 보통의 책을 만드는 기본적인 과정이라면 재미없는 책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스토리에 독자가 납득할만한 개연성이 없어야 하고 스토리를 따라 읽기 어려울 정도로 서사 구조를 망가뜨려야 한다. 이 외에도 많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가며 '열심히' 그리고 '공들여' 책을 만드는 어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노고를 어떻게 인정해줘야 할까.


먼저, 재미없는 책을 열심히 만든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조심스레 하나만 지적하자면, 그 책은 정말이지 너무 재미없다. 그 책에, 그 스토리에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집어넣은 건 아니냐고, 아이들의 두뇌에 너무 많은 지식을 집어 넣고자 과욕을 부린 건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내 생각엔 - 근거는 없지만 - 아이들은 그런 식으로는 무엇도 배우지 않는다. 재밌는 책에서는 뭐라도 찾아내고 배울 것을 만들어내지만, 재미없는 책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아니 배우고 싶지 않다. 


물론 재미만 있다고 모든 책이 좋은 책이 될 수는 없다. 의미없이 자극적인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면 재미는 있겠지만 좋은 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자극적인 섹스와 폭력이 난무해도 의미가 있다면 괜찮다. 아이들에게 읽혀야 할 책에 특정 소재와 관련된 내용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오만이다. 그런 식이라면 아이들에게 절대 보여서 안 될 것은 차라리 TV 뉴스와 신문일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폭력적이고 선정정인 내용의 매체가 또 뭐가 있나? 


그러니 지루한 어른들은 부디 배울 점이 많은 책을 만들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재밌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쓰길 바란다. 그럼 우리가 뭐라도 배울 점을 만들어 낼 테니 말이다. 하긴,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어른들이여,
너부터 좀 놀아라.


놀 줄이라도 안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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