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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티즌 Dec 29. 2021

학교 가는 길


혐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차별과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 인생 크게 굴곡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기간이 있는 만큼 큰 굴곡은 없어도 작은 진동과 진통들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몇 해 전에, 난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다. 한순간에 휴즈가 나간 것처럼 한쪽 귀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삐~하는 이명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심각성을 몰랐다. 그리고 병원에 다니다가 별 차도가 없어서 종합병원에 갔더니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입원을 권유받고 일주일간 입원을 했 다.하나도 들리지 않던 귀는 80% 정도는회복하여, 아주 소곤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크게 지장없이 들을수 있게 되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벨소리를 듣고 찾으려고 해도, 그 방향을 찾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정도이다. 


이런 일에 크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그때 처방받은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인지 그저 무용 담처럼 내가 돌발성 난청이 생겼지 뭐니~ 하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한 친구가 “너 그럼 장애인 등급 받을 수 있겠네? 장애인 등록해. 그럼 너 교육 사업하는데 혜택 많을 거야. 사업주가 장애인이면 사업하는데에서 엄청 도움이 될 걸. 잘됐네, 좋겠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무리 내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도, 이게 이렇게 혜택 받아 좋을 일인가? 순간 띵했다. 솔직히 주차할 곳이 없을 때, 텅 비어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고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등록이라는 것이 혜택을 받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것이 내 양심을 발현인지, 아님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후자일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되어간다. 눈도 귀도, 소화기관도 점점 쇠약해지고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정도에 있어서 그 시기에 있어서 조금 강하게, 조금 일찍 찾아온 이들의 일상을 위한 제도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3년 동안 한 고등학교의 특수반 수업을 진행했다. 경계성장애정도를 가진 학생들이다. 3년 내내 이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게임도 하고, 가끔은 좀 투닥거리면서 놀기도 했다. 인근 공원으로 사진 찍으러 많이 나갔는데, 확실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좀 길다. 조금 다르게 행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정체를 파악하려는 듯이 유심히 관찰을 한다. 그리고는 측은한 듯이 바라보는 사람도, 외면하는 사람도 다들 제각각이다. 그 시선이 난 조금 아프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산만하고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이 시기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경계 선 상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 장애인으로 등록할 것이냐 아니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담당 선생님 의 말씀을 빌리자면 대부분 여자아이들은 등록을 거부하고 남자아이들은 등록한다고 한다. 바로 장애인이 라는 낙인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실이익보다는 잃는 것이 더 크다고 여기는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군입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장애인 등록을 하고, 장애인 전형을 통해서 대학입시도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인이라 낙인 지어 지는 아이들의 삶에서 만날 차별과 혐오가 그들이 스스로 장애인이길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또 몇 해 전, 서울의 한 지역에서 장애인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부 지역주민 때문에 장애인 학 교 설립을 반대하는 분들께 제발 허락해달라고 무릎 꿇고 울며 호소하면 장면이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들은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집값이 떨어진다는 망언을 쏟아내면 반대를 했었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입구에 반대 서명지를 놓고 경비원을 시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반대 서명을 받게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다행히 학교는 설립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은 영화 ‘학교 가는 길’을 개봉하는데, 한 주민이 또 반대하여 영화의 배급 및 상영을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고 한다. 정말 끝이 없다. 


그리고 이 학교가 설립기획되기 전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이 학교가 세워진 부지였던 초등학교는 사실상 폐 교했는데 또 다른 차별 탓이었다. 영구임대아파트 옆에 자리 잡은 이 학교는 개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 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라는 낙인이 씌워졌고, 인근에 또 다른 초등학교가 개교하자 주민들이 이 학교를 기피하여 학생 수가 대폭 줄었고, 결국 학교는 문을 닫았다. 한 드라마의 삽입곡인 ‘낙인’의 가사는 “가슴을 데인 것처럼 눈물에 베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괴롭다.”라고 했다. 우리는 누구에게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에게 데인것 같은, 베인것 같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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