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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티즌 Jan 14. 2022

나를 향한 혐오, 나를 위한 혐오


아이가 2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안고 친구를 만나러 대형 쇼핑몰에 갔다. 

새로 생긴 쇼핑몰이라 사람이 너무 많고 붐볐던 기억이 있다.

늦은 점심에 친구를 만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브레이크 타임이 지나서야 한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 기저귀에서 묵직함이 느껴졌다.
친구에게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고 화장실에 가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줄이 서 있는 장소로돌아와 친구 옆으로 가서 섰다.

그런데 뒤에서 어느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저걸 바로 맘충이라고 하는 거야.......” 

“맘충??” 

“응, 맘충” 

순간 나의 두 귀를 의심했다. 맘충......?? 맘충이라고??? 

그 말을 자기 자식들에게 알려주는 저 아저씨는 도대체 무엇이며, 줄을 제대로 선 내 게 맘충이라니...? 

참 어이가 없고 한편으론 기분이 이상했다.
자식들에게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부모 그리고 그걸 되뇌는 아이들...... 

우리는 사회에 어떤 어른 이 되어야 할까?? 





특수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무용 강사 시절, 수업 5년 차쯤에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막달까지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힘겨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흔히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예쁜 것만 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특별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편견이 있지도 않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인 변화는 나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는 일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몹시 역하게 느껴졌다.

매달 산부인과에 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형아 검사를 하는데, 

정상적이고 건강한 아이에 대한 바람을 늘 품고 있는 부모로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매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부모로서의 마음과 특수학교 강사가 갖는 마음 사이에 그 간극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주변에 강사 활동을 하는 친구에게 이 마음을 털어놓으니, 

대부분의 강사들이 임신을 하면 특수학교나 장애인시설은 그만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임신으로 인해 겪는 불편한 요소를 그런 식으로 원천 차단하는 것이 현명한 건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장애란 무엇일까. 

인식의 문제일까.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혐오는 내 주변에 아주 가깝게 스며있었고,

나 또한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혐오로 스민 사회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 변화하는 하나의 씨앗이 된다면 나의 포지션은 어떤 걸까... 

누군가를 바꾸고 변화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에너지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 그

럼으로써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부터 내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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