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구, [코로나19와 혐오의 시대_올드노멀을 꿈꾸며]를 읽고
혐오에 대한 이론은 혐오를 자연적인 것으로 보는 진화심리학적 입장과 사회적·문화적인 산물로 보는 사회 심리학적 입장이 있다.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의 혐오는 삶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감염병에 대한 지식과 대응책이 없던 시절, 인간의 행동 면역계는 감염 가능성을 혐오로 대응하여 감염을 회피하는 전략을 취했다. 외국인을 배척하고, 생김새나 행동이 통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개인이나 집단을 낙인찍어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이 혹시 가지고 있 을지도 모르는 병원균에 의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전략일 수 있었다. 혐오는 진화적 본능으로 인간에게 남아있고, 여전히 작동하지만, 과학과 의학 그리고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 그리고 교육으로 혐오 표출을 억압하는 등으로 인간은 이 진화적 산물을 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혐오는 효용성을 다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병에 대한 무지는 감염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혐오를 억압에서 풀려나게 하였고, 광범위한 혐오가 발생하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 따라서 혐오는 효용성을 다한 진화의 잔재이기보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방어기제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심리학적 입장에서의 혐오는 인간성과 동물성의 경계에 대한 것이며, 동물과 다른 것이고자 하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가진 취약성과 유한성을 포함한 부정적 의미의 동물성에 대한 감정이며, 이러한 동물성에 오염되기를 거부하는 감정적 표현이다. 오염을 꺼리는 동물성은 배설물과 체액, 시체와 같은 원초적 대상을 말한다. 인간은 인간의 동물성과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존재들인 원초적 대상에 대한 감각상의 혐오를 형성한다. 이러한 원초적 대상에 대한 혐오는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에게 투사된다. 혐오적 투사는 자신 안에 내재한 동물성을 제거함으로써 순수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에서부터 출발하며, 이러한 열망을위해아무런합리적이유없이타인을낙인찍어인간이하의것으로만들고사회적위계를공고히하 거나 형성한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투사적 혐오에는 다양한 믿음들이 결부될 수 있겠지만, 투사적 혐오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인지적 요소는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종의 사람이다(인간이기보다는 동물이다).’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저 사람은 나보다 저급하다(혹은 나는 저 사람보다 종적으로 우월하다).’라는 평가적 믿 음이다. 이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이런 투사적 혐오의 대상으로 쉽게 노출되며, 그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늘, 투사적 혐오는 원초적 대상에 대한 혐오와 결합해 더 다양화하고, 더 강화되고 있다.
삶의 전략으로서 다름을 배척하고, 차이를 혐오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 그리고 투사적 혐오가 원초적 혐오를 깨워 혐오를 강화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혐오로 물들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 다름을 터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한 사람을 고유한 인격을 가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존중할 때, ‘너’라는 개인, ‘나’라는 개인이 개인과 개인으로서 연대함으로써 우리는 혐며드는 사회를 넘어야 할 것이다.
씨앗티즌의오늘은내앞에서있는너와,네앞에서있는내가서로에게말을거는,연대를시작하는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