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초등학생쯤 되는 자매로 보이는 아이 둘과 엄마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그땐 아이들만 보면 안녕~하고 인사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생각 없이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아이가 이를 보이며 웃어줬 고, 엄마와 언니인듯한 아이도 기분 좋은 미소를 함께 보여줬다.
아이가 앉아 있길래 왜 너는 앉아 있니?라고 묻고 보니 휠체어였다.
순간 당황했고, 정적이 흘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아이의 엄마와 언니 그리고 그 아이 모두 표정이 굳었고, 나 역시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 이 흘렀다.
10여 년이 흐르고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부모와 함께 하는 치유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오늘 여기에 오는 길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사 람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싫었다. 나는 괜찮은데....... 그런 눈빛들,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한 번씩 그런 시선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서 여기 온다고 아침부터 서두르며 기분 좋게 나왔는데, 지금은 기운이 좀 없다.”
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신기할 정도로 엘리베이터 그 이전에는 나는 장애인을 주변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그나마 주변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허리가 굽거나, 말할 때마다 고개를 흔들거나, 깊이 팬 주름과 여기저기 핀 검버섯 정도의 늙음이었다.
장애인, 분명 존재하되 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내 세상에서만 그랬던 건가? 내가 편협해서? 그래서 나만 그랬던 걸까?
아직도 순간순간 난 엘리베이터에서의 나를 마주한다. 이제는 어딘가 구석으로 밀어둘 수도 없을 정도로 그때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각인되었기 때문에. 해서 사회를 마주하는 N개의 문화예술교육에서 ‘무심코’ 또는 무지에서 오는 혐오, 그것을 알아채는 것, 알아채는 기회를 함께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