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점 혼자를 택한다.
하교시간은 하루 중 아이의 가장 밝은 표정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도어록 소리부터 경쾌해야 할 그 시각,오늘은 때아닌 울음소리가 들렸다. 훌쩍거리는 와중에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않고 건네는 모습에 잠시 마음이 놓였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같은 반 친구가 사는데 등하굣길에 자주 마주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집 층수를 다시 눌러 취소되는 바람에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가 어렸을 적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던 터라 엘리베이터 이야기에는 나도 모르게 한층 더 예민해졌다.
나는 아이가 울먹이며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친구가 장난을 치고 내렸다'는 말만 듣고 자초지종을 자세히 따져보기도 전에 이놈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말았다. 카톡 메시지 창을 열고 진작에 전송 버튼까지 눌러버렸고 메세지창에는 '친구가 장난을 쳐서 엘리베이터 층수가 취소되는 바람에 울면서 들어 왔어요. 어떻게 된일이죠?' 라고 적혀있었다. 급기야 메세지에는 이미 친구가 잘못있냥 '친구가 장난을 쳐서'라고 단정지어 있었다.
맙소사! 경거망동한 손가락이 후회의 변주로 허공에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쯤 곧이어 상대방 엄마에게 답변이 왔다. 알고 보니 내 아이가 친구와 같이 떠들면서 정신없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바람에 우리 집 층수 누르는 것을 까먹어버렸고, 오히려 그 친구는 아이보다 먼저 그걸 알아채고 우리 집 층수를 배려로 눌러두었는데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르고 뒤늦게 우리 집 층수를 한 번 더 누르는 바람에 취소가 된 것이었다. 이윽고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내릴 때쯤 취소된 걸 발견하고 '야! 층수 취소됐어'라고 말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꼬이기로 작정한 날처럼, 우리 집 아이는 '취소됐어'를 '취소했어'라고 듣고 친구가 장난치려고 일부러 누르고 내린 줄 오해를 해버린 것이다.
한동안 카톡창은 창문이 열린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여차저차 적당히 오해를 풀고 다행히도 카톡창은 훈훈하게 닫혔다. 그렇지만 온종일 찜찜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내 기분은 오늘 아침까지 분명 맑음이었는데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부의 삶은 언제나 그랬다. 내 기분조차 내 맘데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나로부터가 아니라 아이로부터, 때로는 남편으로부터 어긋나 버릴 때가 많았다. 내 마음에 잔뜩 씨앗을 뿌리고 있는 힘껏 물을 주며 햇빛을 쬐고 새싹을 틔워놓으면, 어느새 누군가가 먹구름을 몰고 오거나 비를 뿌리며 날씨를 바꿔놓았다.
내 맘 데로 되지 않는 '내 마음'은 점점 결혼의 쓴맛을 느끼게 해주며 나는 다중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욱하고 자주 짜증을 내면서 대부분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시간을 좋아하던 나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유일하게 평온해지는 시간도 혼자일 때였다.
최근에 [트랜드코리아 2023] 책을 보니 요즘 인간관계는 '인덱스 관계' 라던데 마치 나의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문장 같았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필요에 의해서 관계의 카테고리를 나누고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만남을 피했다. 더 이상 다른 누군가로부터 감정선이 흐트러지는 것이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는 늘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에 나는 이제 이런 불편한 상황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모든 만남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사람들을 원하고 관계속에 둘러싸여 있을때 가장 행복해하던 젊은이는 이제 불혹의 중년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길 마다하지 않는다. 계절마저 겨울을 맞이하고 혼자만의 차가운 기쁨이 깊어지고 있지만 마침내 봄처럼, 언젠가 나도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