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나는 매년 1월의 사람들이 좋다. 마치 와이키키 해변위를 걷고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와이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기운이 넘쳐났다. 여행지의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에서벗어나 자신의 가장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1월의 사람들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밝아져 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작‘ 이라는 설레임과 위안이 그 달의 우리들을 밝게 만들어 주고 있는것일까.
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걱정하지말고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부정어에는 두드러기가 날정도로 심하게 예민해진다. 남편이 늘 ‘안되면 어쩌지?, ’아니 이건 왜이래?‘, ’~때문에 안되‘ 처럼 앞서 걱정하거나 누구탓을 하는 말을 들으면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부정어를 들으면 마치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쉽게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불평불만 매니아’ 남편과 ‘걱정부자’ 아들과 가족을 이뤘다. 때문에 나는 시시때때로 예민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런모습들을 볼때마다 나는 점점 짜증이 늘어가고 말투가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에게 다정하거나 친절하게 말하는것이 오히려 어색해졌다. 나는 남편과 있는 시간 대부분 매번 티내지 않아도 마음은 늘 화가 나있다. 모든 이유는 남편때문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전 읽었던 한구절의 문장이 오랜시간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시 두려울 뿐이지
두려운 사람이 아니며,
잠시 슬플뿐이지 슬픈사람이 아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_류시화> 중
그저 잠시 마음이 그럴뿐이지 내 존재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짜증날뿐이지 짜증난 사람은 아니야’, ’가슴이 답답할 뿐이지 답답한 사람은 아니야‘,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지 복잡한 사람은 아니야’. 모든 순간마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면 금새 마음이 평온해 졌다.
그리고 이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남편을 보아도 지금 ‘이 상황이 불평인거지 불평하는 사람은 아니야’, 매사 걱정을 늘어놓는 아들을 보아도 ‘받아쓰기가 틀릴까봐 내일이 걱정인거지 걱정하는 아이는 아니야’ 라고 생각하니 남편을 보아도 아이를 보아도 불편한 마음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그토록 불편해졌던 이유도 남편이 이런사람이었으면, 아이가 이런모습이었으면 하는 불평때문이었다.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바뀌어야 할 것은 나의 마음 가짐뿐이다.
올해 나의 목표는 ‘바라지 않기’ 이다.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걱정하지마 다 잘 될거야‘ 라고 지금 이 순간이 바뀌기를 바라는 대신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며 지금을 받아들일 것 이다. 부디 일월버릇 십이월까지 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