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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밥이 나를 울리네

어둠을 벗어나는것은 언제나 괴로워

by 마이분더



아침잠 많은 어미의 가장 괴로운 순간은 말 그대로 아침이다. 특히나 추운 날에는 뜨끈한 전기장판을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이 내 일생일대의 괴로움이 되었다.


오늘도 이불 위로 날아든 아이의 '배고파!!' 소리에 치히로만큼이나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켰다. 급기야 눈꺼풀을 치켜뜨고 멍하게 부엌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봤자 계란 프라이에 모닝빵을 구워주는 정도지만(기분 좋으면 사과도 깎아주고) 아무튼 내 의지대로 눈을 뜨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게 이 어미의 작은 소원이다.



아이가 어제 아침부터 오른쪽 귓속이 아프다고 했다.중이염인가? 그런데 열도 없고 침을 삼킬 땐 안 아프다고 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뭐지? 문득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이의 귓밥을 파 준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신성한 동굴 속을 내가 파고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귓속을 잘못 건드렸다간.... 아무튼 상상만 해도 무서웠다. 그리고 친정 아빠가 늘 "귓밥은 저절로 나오는 거니까 절대로 파주지 마라. TV에서 의사가 그랬어"라고 말했었기 때문에 내가 파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


그래도 계속 쿡쿡 쑤시며 아프다길래 슬쩍 면봉을 가져와 아이 귓속을 살살살 파 줬는데 역시나 오두방정을 방정을! 역시나 나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오늘 오후이비인후과로 달려가 내시경으로 귀속을 들여다보니 8년 묵은 귓밥이(말잇못). 아무튼 저 깊은 심연 아래 단단히 자리 잡은 귓밥은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고 긴 시간 오일 마사지를 마친 후 탈출했다. ​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귓속으로 집게를 넣을 때마다 울고불며 '그만하세요(너나 그만해) 언제까지 넣으실 거예요?라며 또 한 번 오두방정을 떨었다. 나는 점점 분노 게이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너는 이제 어린애가아니라고! 처음 몇 번은 간호사 선생님도, 의사선생님도 너를 안쓰러워 달래주고 위로해 주실 수 있지만 계속해서 울고 또 울면 이제는 네가 안쓰럽기는커녕 점점 화가 나실 거라고!!" 아이 옆에 나는 복화술로 읖조렸다.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치며 알겠다고 했지만 저녁 무렵까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까전에 의사선생이 보여주신 사진을 떠올리니 곧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흰 솜털이 보일만큼 아주 깨끗해진 아이의 귓구녕은 이내 힐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겁이 나서, 혹은 슬퍼서, 때로는 힘들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나이는 몇 살까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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