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는 매일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 매 달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 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래놓고 그렇게 가고 싶다던 여행을 남편과 아들 둘만 보내고 2박 3일 혼자 집에 남았다. 아이가 태어자나마자 아들이랑 둘만의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다던 남편은, 당장에 실천에 옮기라는 내 성화에 못 이겨자의 반 타의 반으로 9년 만에 꿈을 이뤘다.
다음날 뜨고 싶을 때 눈을 뜨며 일어난 아침은 살면서 내가 이토록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달았다. 너무 달콤해서 하마터면 별사탕 같은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끼니는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치우고 싶을 때 치웠다. 심심해질 무렵 집안 곳곳 청소기를 돌리고 말끔히 정리정돈을 마쳤다. 한 시간이 지나도 다시 어질러지지 않는 집안 풍경은 한동안 어수선했던 마음까지 정돈시켰다.
11시와 12시 사이 주문한 베이글샌드위치가 도착했다혼자서 너무 비싼 거 먹나? 생각하면서 장바구니에 두세 번 넣었다 빼긴 했지만 '그래 뭐 아점이자나? 아침 더하기 점심, 두 끼를 한 번에 퉁치는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하면서 '아이스라테에 우유 적게요'라고 메모까지 더했다. 그나저나 남편과 아이취향을 고려하지않아도 되는 식사시간이 이렇게나 행복하다고? 엊그제까지 휘몰아치던 감정들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사이 친정엄마는 아침과 저녁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밥은 먹었냐, 혼자서 외롭지는 않으냐, 아이는 잘 놀고 있는 거냐, 사진은 없느냐.....(중략)' 아니 난 가지도 않은 여행지 사진을 왜 달라는 건지. 정말 귀찮기짝이 없었다. 앞으로 오는 전화는 '못 들은 척 안 받아야지!' 굳게 다짐했다. 불효녀라도 별 수없다. 나는 오늘 굶어도 행복하고 셋이 있을 때보다 신이 난다. 아무튼 행복하다고요! 이 순간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오로지 남행선씨 뿐이라고요!!
이날은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기 싫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도 집에 있는 시간이 아쉬웠다. 24시간 혼자있는 우리집은 결혼 이후 처음이었다. 하루종일 평온한 나 자신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을 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울적해지면 느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다가 몸만 느슨해지고 게으름은 꿈조차 내일로 미루기 일쑤였다. 나는 늘 그렇다. 울적하다가 미루고, 미루다 짜증을 내고 그러다 길을 잃는다. 그리고 여지없이 육아 때문에 내 시간이 없다고, 돌밥돌밥 귀찮다고 남의편하고는 말이 안통한다고 신세한탄을 하며 짜증을 낸다이를테면 가장 가까이있는 남편에게 짜증의 원인을 돌리면서 말이다.
남편과 아들이 없는 동안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2박 3일이 지나가고 난생처음 깨달았다. 나는 왜 세계일주를 꿈꾸는지, 왜 그토록외국에 나가 살고 싶어 하는지. 나는 매일 힘이 들었던것이다. 일상이 거지 같다고 느낄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집을 기어코 떠나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