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를 다시 시작했다

by 마이분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행복할 때보다 힘든 순간에 더 많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긴 글은 주로 무거운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금처럼 타이핑으로 시작하는 글쓰기도있지만 거의 매일 손글씨 다이어리를 쓴다. 최근에는 그 다이어리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훑어보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날의 기록은 다시 읽는 순간 뭔가 낯 뜨겁고 민망함과 동시에 그날의 감정이 떠올라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깟 일로 맘 상했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이런 일은 왜 나한테만 생기냐며 여지없이 운명을 탓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나날로 마침표를 찍어두고 싶어졌다. 그렇게 영혼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감사의 순간을 찾게 된 날이면 이곳에 차곡차곡 모아두려 한다.


끊었던 믹스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끊었던 화를 다시 내기 시작했던 순간부터였다. 참았던 분노버튼이 안타깝게도 아이에게 향했다. 요 며칠 아이는 '엄마 때문에 틀렸잖아',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어'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샌드위치데이여서 태권도학원에서 레크리에이션을 한다고 했다. 도복 말고 편한 복장을 입고 와도 좋다는 문자가 날라 왔다. 아이에게 그대로 전하며 '오늘은 도복 안 입어도 된데'라고 했더니 불현듯 엄마가 이번에도 잘못 알았을거야 라며 다짜고짜 짜증을 내고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아이와 남편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무슨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는 불평불만 마니아다. 이건 이래서 투덜, 저건 저래서 투덜거린다. 그때마다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같이 있으면 매번 긍정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될 거야' '저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지', '이건 이래서 안돼' 라며 부정적인 에너지만 뿜어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근데 그런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다. 세상에서 남탓하는 사람이 제일 싫은데 그게 남편이라니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이때문에 산다는 말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없는 사람이다~' 하고 사는데 아이마저 남의탓 시추에이션이라니! 꽤나 오래, 참고 또 참았던 분노버튼이 한순간에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 얼굴에서 처음 본 놀란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뭐에 홀린 듯이 불호령을 치면서 나조차 내 목소리에 놀랄 지경이었다.


"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남의 탓하는 거랬지?"

"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의심부터 하는 건 용서받을 수 없어!"

" 너 그렇게 불평불만 하면 다른 사람 어떤 누구도 니 옆에 있지 않을 거야!"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문장들까지 쏟아내며 계속해서 화를 냈다. 남편에게 쌓아둔 말들이었다. 어리둥절 겁에 질린 아이는 말했다.


" 나도 아까 내가 한 말 후회하고 있어. 다신 안 그럴 거야"


어린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후회'라는 단어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후회는 내가 먼저 했어야 했다. 깜짝 놀랄 만큼 화난 표정과 소스라치게 만든 엄마의 목소리는 아마 아이의 머릿속에 꽤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잠시 긴 호흡 끝에 아이를 다시 꼭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어. (아빠처럼)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 곁에는아무도 오고 싶지 않을 거야.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무서운 목소리로 전한 것은 엄마 잘못이야. 그건 정말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다.


곧이어 아이는 편안복장을 입고 태권도장으로 향했다.아이는 좋아하는 산책길을 가로지르며 씽씽카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안도했다.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콧노래를 마칠 즈음 태권도장에 도착했고 아이는 말했다.


"이따가 태권도 끝나면 아빠 보고 데리러 오라고 전해줘"


다행히 오늘도 영혼을 끌어모아 감사의 순간을 찾았다

나에게 남편은 없지만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