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매듭을 지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살면서 ‘빈틈없이 완벽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빈틈’이 있으면 그 완벽함이 금세 무너져버릴 것만 같이 우리는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나로선 ‘틈’이라는 단어가 좋게 들릴 수 없었다.
『언어의 온도』 4장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빈틈없음’을 완벽으로만 아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아, 내가 그렇게나 ‘빈틈없음’을 갈구해서, 빈틈이 있던 그동안의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구나. 그리고 나에게 빈틈이 존재했기에 그동안의 결실들이 가능했던 거구나. 이제껏 나 스스로 ‘틈’을 ‘허점’으로 정의해 왔다면, 이제 난 ‘틈’을 ‘여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빈틈없던 적은 없는데도, 빈틈을 없애려 하면 할수록 나 스스로에게 얄팍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였다. 오늘 「틈 그리고 튼튼함」을 통해 틈이 소중하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제주의 돌담”으로 살아가겠다.
나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다. 덜렁대고 눈치가 없는 그런 친구. 가끔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런 친구. 노는 것이 마냥 좋아 보이는 그런 친구. 계획 없이 막연하게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사는 그런 친구.
그런 그 친구가 보이는 강인함은 경외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정말 가끔, 그 친구에게서 엿볼 수 있는 그런 튼튼함. 주변이 무너질 때 꿋꿋이 서있는 그 사람은 틈투성이다. 내가 꿈꾸는 “제주의 돌담” 같은 사람이다.
내가 이 친구를 보면서 느꼈던 ‘틈’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를 그저 ‘덜렁대는 아이’로만 바라보았던 나는 우매한 사람이었구나. 이 친구를 보면, 틈은 ‘여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틈은 사람이 입을 수 있는 갑옷이며, 사람이 들 수 있는 방패이며, 사람이 쓸 수 있는 투구이다. 나도 그를 따라 ‘틈’을 만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