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정석은 내가 마련한다
담임 선생님께서,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 『다정소감』에 수록된 에세이 몇편을 읽어주셨다. 그중 1부 제목인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는 맨 처음 등장하는 산문 「마트에서 비로소」에서 작가가 설명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스스로 되새긴 다짐이다. '두괄식 인간'이 못 되는 '미괄식 인간'이 마트에서 김솔을 담아두는 용도의 '김솔통'을 발견하고 떠오른 그의 생각을 담은 이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미약하지만 '김솔통'처럼 대체불가능한 텍스트로 자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가 설명하는 것처럼, 김솔통은 김솔을 담아두는 통이다. 처음에는 너무도 하찮다고 생각된 이 김솔통은, 정말, 참기름이 묻은 김솔을 담아두기에 적격이며, 작가는 김솔통을 한 번 사용한 뒤 김솔통 외에 김솔을 올려 둘 마땅한 곳도 없다고 깨닫는다. 이는 김솔통만 할 수 있는 역할이고, 김솔통이 마트 구석에서 갖는, 하찮지만 뚜렷한 존재감이다.
아주 어렸을 적(어른들로부터 “너 아직 어려”라는 말을 하도 들어온 터라 내 일생을 시간순으로 소개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내게 이 말을 한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한창’인데, 흥)에는 컨셉이 뚜렷한 사람을 동경했었고, 좀 전까지는 질투했고, 지금은 닮으려고 노력한다. 유일무이한 사람들에게는 ‘만’이라는 조사가 참 잘 어울려서, 나도 ‘나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 혈안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웬걸. 부질없는 짓이었다. 원 앤 온리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들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원 앤 온리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그 무엇인가를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쫓아가서 결승선–우리는 이걸 넘사벽이라 부르기로 했어요–을 넘은 것이고, 그때 받은 트로피에는 분명 ‘one and only’라고 새겨져 있었을 터이다. “그 무엇인가”에 귀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즐길 수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 트로피를 거머쥔 사람들은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마니아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 앤 온리들을 오래전부터 지켜보며 찾아낸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컨셉이 확고한 그들은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에서 말하는 ‘락지자’를 맡고 있다. 아는 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그것을 즐기는 자만 못한다는 공자의 명언은 이렇게 세기를 건너 현재까지도 트로피 수상 자격의 지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어떤 ‘무엇’을, 나만이 할 수 있는 형태로 도전해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법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신형철 평론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는 일생을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죽어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뛰어난 사람들이 도처에 자리잡은 이 세상에서, 어지간한 몸짓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게 뻔할 뻔 자다. 그치만 유달리 중대한 무엇이 되려고 진을 빼지는 않겠다. 희미하나 유일무이한 내 자리–내가 아니고서야 채워지지 않는, 그래서 내가 사라지면 텅 비게 되는 하나의 자리–를 차지해 볼 테다(‘자리 차지’보단 ‘지정석 마련’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마치 ‘김솔통’처럼. (외람되지만, 이보다 아주 사알짝만 더 비중이 커도 좋지 않을까? ‘김솔’까지만이라도?......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