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내 영혼의 음식

추억의 음식에서 끌어 올린 감각적 글쓰기

by 문이

어떤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때때로 그 음식은 잊고 있던 한 사람을 불러오고, 오래된 사랑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어느 날, 팥죽 한 그릇이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음식은 단지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통로가 된다. 맛은 시간이 지나 사라져도, 그때의 장면과 온기는 여전히 입안과 마음속에 남아 있다.


감각을 깨워 그리운 음식과 함께 추억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썼던 그 때의 글을 소개해 본다. 이 글은' 행복한가라'라는 NGO기관의 제안을 받고 기고한 글이다.





[기고 글]

내 영혼의 음식


인간은 식물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없다. 다른 생명체를 섭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이런 먹는 것과 관련된 말들이 속담처럼 일상화된 이유는 먹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린 음식에 대한 추억도 소중히 여긴다. 나만의 향수가 담긴 음식을 먹을 때면 함께 했던 그 사람이 늘 옆에 있는 것처럼 마음까지 배가 부르다.


음식에 대한 정서는 우리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무실 아래층에 자주 가는 한식뷔페가 있었다. 마침 그날이 동짓날이어서 하얀 새알이 든 팥죽이 나왔다. 한 동료는 팥죽을 담아주는 아주머니에게 한마디 했다.

"와, 오늘 팥죽을 먹게 되다니 꼭 친정에 온 거 같아요."

아주머니는 친정엄마의 미소를 지어주며

"많이 먹어요." 했다.

친정 엄마와의 팥죽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엄마를 떠올리며 더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둘러앉아 하얀 찹쌀 반죽으로 동글동글 새알 빚던 기억, 차가운 십이월의 기나긴 밤에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여 언니와 함께 팥죽을 먹었던 기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나는 가끔 친정 엄마가 어렸을 적 만들어준 음식들이 간절해진다. 음식이 돌아가신 엄마를 불러내기도 하고 엄마 생각이 음식을 떠올리게도 한다. 씁쓰름하고 잘 익은 고들빼기김치, 시원하고 깔끔한 열무김치, 갓 짜낸 참기름으로 무친 시금치나물, 아궁이 숯불에 구운 김. 봄이 되면 어김없이 쑥을 뜯어다 둥글납작한 쑥떡을 함께 만들어 먹었다. 향긋한 쑥 향과 콩가루의 환상적인 조화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장독대에 가서 가끔 고추장을 찍어 먹기도 했다. 설날에는 유과를 만들어 먹었다. 그 음식들이 완성되기 까지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거기에 느린 시간까지 보태져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요즘의 냉동식품이나 패스트푸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라.


나는 홍시를 보면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홍시를 내다 판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아마도 들깨 칼국수를 보며 아버지 생각을 할 것 같다. 아버지와 자주 가는 칼국숫집이 있다. 우리는 들깨 칼국수와 바지락칼국수를 하나씩 시켜서 나누어 먹고 늘 커피를 마시러 간다. 정해진 코스처럼 되어간다. 그 시간들을 쌓아 칼국수와 아버지를 잊히지 않는 무엇으로 남겨두려는 듯하다.


사람들은 집밥을 그리워한다. 그 맛이 그리워 사 먹거나 만들어 먹는데 그런 맛이 안 난다. 어떤 이민자들은 자장면을 먹기 위해 향수에 젖어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간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걱정 하나가 올라온다. 나는 나의 아들에게 어떤 집밥, 어떤 음식을 해 준 기억으로 그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을까? 내가 해 준 음식보다 인스턴트 배달 음식을 더 좋아하는 아들. 피자, 치킨, 햄버거를 배달시켜주는 것으로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지금은 군에 가 있으니 해주기가 어렵다. 아들이 휴가 나오면 물어봐야겠다. 엄마가 해 준 음식 중 뭐가 제일 맛있었고 기억에 남는 음식이 뭐냐고. (만약 없다고 하면 어쩌지?)





문득, 음식이라는 것은 기억을 맛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엄마의 음식이, 따뜻한 밥상이, 그리고 정성 가득한 국 한 그릇이 남겨진다면 그건 분명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날마다 먹어야 하는 인생이다. 이왕 먹는 거, 미각만 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을 열어 누군가가 만들어 준 음식, 혹은 내가 만든 나와 가족을 위한 음식에서 사랑과 감사함과 삶의 기쁨을 찾아보자. 아마 생각만으로도당신의 마음까지 포근히 데울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은 사라져도, 마음에 남은 그 온기는 오래도록 살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따뜻한 밥상으로 차려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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