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음식이 불러낸 글
나는 팥죽을 보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와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예전에는 다른 절기와 마찬가지로 동지가 되면 두 분은 꼭 팥죽을 끓여서 나에게도 나누어 주시곤 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온기와 손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이제 팥죽은 어떤 계기가 생겨서 동지에 일부러 식당을 찾아야만 먹게 되는 음식이 되고 말았다.
지난겨울에 친정 식구들과 식당에서 동지 팥죽을 먹고 썼던 글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함께 팥죽을 먹게 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런 연유에서였을까? 난 그 소중한 기억을 붙들어 메어두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또 남겼나 보다.
오늘은 12월 21일,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다. 우리나라에는 붉은색 팥이 액운을 막아 준다는 이유로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때가 되면 젊고 건강했던 나의 시어머니는 밥알이 들어 있는 팥죽을 직접 만드셨다. 붉은 팥을 시장에서 사다가 물에 불린 다음 믹서기에 갈았을 것이다. 이것을 큰 냄비에 담아 불에 올려놓고 오래도록 주걱으로 저으셨을 테다. 붉은색의 강한 기운이 액운을 막아준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움직이셨을 어머니. 다 된 팥죽을 찬합통에 담아 직접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수고로움을 자처하여 자식들 먹이는 게 낙이셨던 어머니는 이제 치매로 그런 즐거움을 못 누리신다.
동생, 셋째 언니, 휴가 나온 아들, 아버지, 나까지 우리 다섯은 동네 유명한 칼국수 집에서 하는 팥죽을 먹으러 갔다. 동네 맛집이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주로 포장을 해가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새알 팥죽 한 가지 메뉴만 한다고 해서 우리는 팥죽 5인분을 주문했다.
은빛 스테인리스 대접에 하얀 새알 섞인 보랏빛의 팥죽이 담겨 나왔다. 갓 담아서 싱싱하고 달달한 배추김치와 살짝 익어 맛이 든 시원하고 깔끔한 열무김치도 함께 차려졌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설탕을 한 두 스푼씩 넣고 추위를 녹여주는 뜨끈한 팥죽을 호호 불어가며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어렸을 때 시골에서 먹은 팥죽 생각나? 엄마랑 찹쌀로 반죽해서 새알 빚고 한 솥 끓여서 밤에 먹었던 거. 팥죽은 식어도 맛있었잖아."
언니가 추억을 소환한다.
"응, 맞아. 밤에 잘 익은 시원한 동치미랑 함께 먹으면 진짜 맛있었는데."
내가 맞장구를 친다.
그 시절 동짓날이면 어머니와 딸들이 방바닥에 둘러앉아 하얀 찹쌀 반죽을 만들었다. 찰기가 생긴 반죽 덩어리에서 한 움큼을 뜯어 뱀처럼 길쭉하게 만든 다음 새알만큼씩 떼어냈다.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른 손을 포개어 동글동글 굴렸던 기억이 난다. 그 새알을 빚는 동안에 우리는 어떤 얘기들을 나누었을까?
어릴 적 시골살이의 많은 경험들은 우리 자매들을 추억 맛집으로 초대하곤 한다. 자연의 널린 것들로 소꿉놀이 했던 일, 시냇물에 몸 담그고 물장구치며 놀았던 일, 모내기 도와주다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 날 살려라 소리쳤던 일, 아버지 술 취해 들어오면 도망갔던 일 등,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맵고 했던 갖가지 추억들은 다양한 맛으로 되살아나 심심치 않게 해 준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팥죽을 좋아한다. 나만 먹기 미안해서 비조리된 팥죽 2인분을 포장해서 왔다. 종업원이 설명해 준 대로 갈아 놓은 팥에 동량의 물을 넣고 끓인다. 끓으면 새알을 넣고 계속 저어주면서 익을 때까지 더 끓여주면 완성이다. 너무도 편리한 세상이다.
밋밋할 수 있는 일상에 절기마다 함께했던 음식은 우리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해 주었다. 잊혀가는 전통 음식들이 편리하게 이렇게라도 마주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때의 음식과 사람은 사라져도, 함께한 온기와 이야기, 그리고 그 순간의 감각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나를 다시 쓰게 만든다. 글을 쓰는 동안은 팥죽처럼 끓고, 식고, 다시 데워지며 추억여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