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하는 감각
가끔은 묻는다.
“나는 어떤 순간을 좋아하지?”
그 질문 앞에서 생각보다 오래 멈춰 서게 된다.
어릴 적엔 좋아하는 걸 손에 꼽기 쉬웠다. 과자, 편지, 새 운동화 같은 구체적인 대상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감정과 분위기, 풍경과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구본형 작가의 글 한 편이 마음에 남았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며, 그것이 곧 삶의 태도라고 말했다.
“주인이 괜찮은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마신 술,
새벽에 일어나 읽은 좋은 책,
장정이 마음에 드는 공책과 검은색 파카 만년필,
아내와 함께한 대작, 바다 내음, 물고기 한 마리…”
— 『익숙한 것과의 결별』中
구절을 읽고, 나도 따라 적어 보았다. 그리 거창하지도,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떠올릴수록 내 삶은 꽤나 풍성했다.
나는 이른 새벽 떠오르는 해를 보며 걷는 걸 좋아한다.
작은 화분에서 밤새 피어난 꽃 한 송이,
철마다 바뀌는 수목원의 개성 가득한 자연,
육교 위 한 모퉁이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들꽃.
겨울 온천 노천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로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낄 때,
추운 날 아버지와 함께 먹은 들깨 칼국수 한 그릇,
가족들과 모여 서로를 위한 요리를 함께 하는 시간,
친구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잊은 날.
조용한 도서관에서 좋은 문장을 밑줄 긋는 순간,
블로그에 올리고 조심스레 댓글을 기다리는 마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글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장을 꺼내던 순간,
좋아하는 책에 마음을 빼앗겨 읽다 말고 미소 지었던 때.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삶의 장면들이다.
돈이 많이 없어도, 시간이 많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것들.
크지 않지만 깊은 만족을 주는 것들.
그 소소한 감각들이 내 하루를 반짝이게 한다.
“일상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그 팍팍한 생활에 물을 뿌린다.
마음의 여유만이 일상의 여유를 낳는다.”
— 『익숙한 것과의 결별』中
삶이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시간들의 합이다. 그것들이 바로 나의 감수성이며, 나의 태도이며,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좋아하는 것을 자주 떠올리는 일은 여유를 가지고 나를 자주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삶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된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글로 남긴다. 그 기록이 곧 나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