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며 지금을 살다
나의 아버지는 올해 88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신지 8년이 되어간다. 모든 몸의 기관들이 노화되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니 아버지는 외로움 속에서 죽을 날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대쪽 같은 성품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엄한 면만 부각하셔서 가족들과는 늘 거리가 있었다. 마을 일과 약한 술과 다급한 성격으로 어머니와의 마찰이 많았고 아주 가끔은 폭력도 행사하셨던 아버지. 우리 다섯 딸들은 어머니 편에 서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쌓아갔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스스로를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며 살았던 아버지의 이면, 가족을 위해 희생한 날들은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랬던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다정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셨다. 어머니는 혼자 살게 될 아버지에게 살림살이를 가르쳐 주었고, 막내아들과 딸들에게도 무언가를 남기려 애쓰며 죽음을 준비하셨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자식들은 더욱 아버지를 챙기고 아버지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보여주신다. 자식들도 철이 들어 그 사랑을 더 잘 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니 아버지에게 좀 더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어제는 사람이 그리울 아버지를 생각하며 점심식사를 하자고 불러냈다. 날이 더워서 나오기를 망설이시더니 버스를 타고 오셨다. 솥밥집에 갔는데 맛이 괜찮다며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늘 입맛이 없다며 먹는 것도 즐기지 않으셨는데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식당을 잘 고른 것 같아 뿌듯했다. 밥 값은 자신이 계산하려고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늘 선수를 치신다. 함께 커피도 마시고 공원산책도 했다.
아버지와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할 얘기도 별로 없거니와 보청기를 했음에도 잘 들리지 않는 귀가 소통을 방해한다. 나는 애써 할 얘기를 찾아내고 근황을 묻기도 하며 적막함을 물리치려 살짝 애를 쓰기도 한다.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셀프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려도 본다.
"니가 전화해서 이렇게 불러주니까 밖에도 나오게 되고 바람도 쐐서 좋구나."
'외롭다'. '고맙다'는 표현임을 알아채니 안쓰러움이 올라온다. 어렸을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이기에 이 작은 표현들도 더없이 감사하고 따뜻하다. 나는 여전히 호칭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빠'라고 부른다. 어릴 적 굶주렸던 아버지의 사랑을 그 시절로 돌아가 이제라도 만끽하고 싶어서일까?
떠나는 버스에 앉은 아버지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가 뒤늦게 발견하시고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셨다. 그 환한 웃음에 내 마음에 꽃이 피었다.
아버지가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하다. 그의 나이와 몸과 혼자인 처지가 늘 죽음을 염두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지금'들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뒤늦게 맛보는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글에 담아 저장해 둔다. 글을 쓰면 그 순간들이 더 확실해져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예전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멀고 낯설었다.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많고, 기회는 계속 찾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너무도 가까이에서 찾아왔다. 나는 서서히 매일의 순간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늘’이라는 날이, 어쩌면 나나 누군가에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작은 일에 감사하고, 때로는 괜히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 번은 글쓰기 챌린지에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글로 당신 곁에 남을게요.
나의 글 향기가 느껴질 때면 옆에 있음을 알아채주세요."
그러고 나니 가족과 이웃들에게 나의 따뜻한 마음과 추억이 담긴 일상들을 기록으로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글은 남아 있을 테니 나는 그들 곁에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흉보는 말, 나를 가두는 말, 공허한 말 대신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음을 담은 문장을 쓸 수밖에 없다.
죽음을 의식하면, 삶은 더 또렷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할 때, 나의 죽음을 상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는 것이 바로 글이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오늘 이 문장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 물음 하나가,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