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나는 더 이상 뒤에 서지 않는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살게 된 이야기

by 문이

대학교 시절, 여성학 수업 시간이었다. 팀 과제 발표가 있었고, 나는 밤새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 원고를 정성스럽게 썼다. 하지만 막상 발표를 맡지는 않았다. 너무 부끄럽고 긴장되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팀원이 나 대신 발표를 했다.

그런데 발표를 하던 그 친구는 내 글을 마치 자기가 쓴 것처럼 이야기했다. 교수님은 그 친구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며 칭찬을 해주셨고,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내가 썼다고 말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뒤에 서기로 선택했다.

사실 그게 내 삶의 방식이었다. 앞에 나서는 건 부담스러웠고, 눈에 띄는 건 무서웠다.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조용한 아이, 눈치 보는 아이로 살아오며 언제나 남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나’를 감추고 살았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처음엔 누가 볼까 두려워 숨기듯 썼고, ‘이런 걸 누가 읽을까’ 하는 마음에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이야기를 계속 썼다. 나의 어린 시절, 그때의 나의 가족 이야기, 성장과정, 현재의 나의 일상과 생각, 미래의 나까지 모두 만나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나의 인생지도가 그려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글 속에 담긴 내 진심이 하나둘씩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글 잘 읽었어요.’

‘작가님 글을 보며 위로받았어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조용히 감춰왔던 감정과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는 더 이상 뒤에 숨고 싶지 않아졌다.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뒤늦게 청춘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글을 쓰는 일은 내 과거를 꺼내어 마주하고, 지금의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앞으로의 나를 그려나가는 일이다. 예전의 나는 늘 주저했지만, 지금의 나는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전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중심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예전의 나처럼,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쓴 이야기는 분명 누군가에게 닿을 거예요.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신 자신으로 살아보세요.
글을 쓰는 일이 당신을 살아 있게 만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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