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해 너무 진지한 태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 까지도 무겁게 만든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에세이 The Curtain: An Essay in Seven Parts (불어 원제 Le Rideau, 2005년 출간)에서 “This is the sulfuric acid that corrodes everything witty.” (이것은 모든 재치 있는 것을 부식시킨 황산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전체주의나 도덕적 광신, 극단적 진지함을 황산에 비유하며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재치, 유머, 풍자, 아리러니한 사고 등을 모두 파괴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세 시대의 신 중심사상이 과학이나 예술의 발전을 방해한 사레도 떠오른다.
자유로운 사고, 재치와 농담은 유연하고 여유로운 삶에서 나오는 것 같다.
더 나아가 힘들고 뻑뻑한 삶에 기름칠을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유머,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유머 있는 남자는 섹시하다.
유머와 섹시가 서로 어울리는 말인가 싶다. 그렇지만 난 가끔 그렇게 느낀다.
유머는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 높은 인지능력과 창의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말을 재치 있게 이어가는 능력은 빠른 사고력, 언어적 유연성, 상황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유머 있는 사람은 지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남편이 운전해서 어머니와 함께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고, 숨차라. 왜 이렇게 숨이 차냐."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게 담배 좀 끊고 막걸리 좀 그 만 마시라 했잖아요."
남편의 실없는 농담에 어머니도 나도 웃었다.
어머니는 담배랑은 연관도 없고 술도 예전에 가끔 한잔 정도 드셨다.
이 짧은 농담 한마디가 어머니의 고통을 웃음으로 덮는 듯하다.
시어머니도 가벼운 농담을 자주 하시곤 했다.
"요양보호사 님이 어머니가 잘 따라줘서 예쁘대요."
치매인 시어머니를 방문 관리하는 요양보호사가 내게 한 말을 전했다.
"잘 보여야 하나라도 더 얻어먹지."
어머니식 농담이다. 치매로 인해 기억은 죽어가도 농담은 살아있다.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저 새끼 한 번 휴가 나오면 꼭 시집간 딸이 친정집 와서 거덜내고 가는 거 같애, 그치?"
남편이 아들을 살갑고 세심하게 챙기면서 하는 말이다.
"너 거덜 내고 가니까 이것 좀 도와줘"
나도 그에 맞장구를 치느라 이렇게 말했더니
"난 군에서 나라 지키느라 힘들잖아, 나 땜에 엄마 아빠가 이리 안전하게 지내는 거야." 한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우리 위 상사가 그랬어. 경계근무 똑바로 해라. 너네가 하나 잘못하면 너희 부모형제가 위험해 처할 수 있다."
남편과 아들은 연기자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예전 영화나 개그 프로에서 인기 있었던 마동석 배우의 대사, 조선족 보이스피싱 대사 등을 외워서 똑같이 흉내를 낸다. 어찌나 비슷한지 난 가끔 그들의 연기에 배꼽을 잡고 웃으며 '연기자가 될 걸 그랬다' 한다. 문제는 남들 앞에서는 쑥스러워서 잘 못한다는 거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귀도는 아들과 함께 나치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는 아들 앞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숨기기 위해 수용소 생활을 하나의 게임처럼 꾸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웃음과 사랑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극단적인 상황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 일상에 적용할만하다.
일부러 소리 내어 웃다 보면 진짜 웃게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유머 한 마디에 웃음 짓게 되고 시름을 잊는다.
농담, 이 도구로 뻑뻑한 삶에 기름칠을 하자. 그리하여 무거운 삶도 가볍게 연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