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선물한 남자
나는 샤워를 할 때마다 그 남자를 생각한다. 사람의 여러 감각 중 후각의 위력 또한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 남자가 선물한 향기를 맡으며 콧노래를 부른다. 그의 단순함에 피식 웃음이 난다.
따뜻한 빗방울이 머리부터 피부를 감싸고 흘러내리면 꽃향기 가득 머금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러고는 화사한 꽃들로 채워진 정원을 산책하는 듯 향기에 취한다.
우리 남편은 다람쥐처럼 늘 모으는 게 취미이다. 한동안은 바디 클렌저를 다 쓰기도 전에 계속 샀다. 뭔지 모를 그만의 기준에 따라 올인원부터해서 아들 것까지 각종 필요한 종류들을 샀다.
어느 날 내 전용 바디 클렌저가 바닥을 보여서 남편의 것을 사용했다. 다 쓰지도 않고 조금씩 남은 클렌저들이 선반에 늘어선 것이 꼴사나워서 없애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남자 화장품 향이 진하게 풍겨서 나의 성이 바뀌는 기분이었다. 여자가 남자로 변신하는 판타지 속 주인공 같았다.
"나한테서 남자 냄새가 나!"
급기야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무슨 뜻인지 몰라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기가 클렌저를 다 쓰지도 않고 저래두니까 써서 없애려고 내가 썼더니 맨날 나한테서 남자 냄새가 나잖아. 난 향긋한 꽃향기가 좋은데."
했더니 남편은 진작 말하지 그랬냐면서 원하는 걸 고르라고 독촉을 한다. 난 됐다고 저거 남은 거 써서 없애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쓸 거라며 계속 어떤 걸로 주문하냐고 묻는다.
다음날 도착한 물건에 난 참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꽃향기 운운했더니 정말 꽃 그림이 가득하고 제품명마저 꽃시장이라 크게 새겨진 상품이 도착한 것이다.
'아우, 정말 단순하기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말한 그대로를 찾아서 샀네.'
그의 배려가 고마우면서 투박한 생각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적나라한 상표명에 왠지 머리 아픈 인공 향일까 싶었는데 웬걸, 정말 자연의 풍부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그러고는 이 향과 함께하는 샤워 시간이 즐겁고 늘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향과 함께 살아났다.
남편은 임플란트를 하고 나서 자기 전용 치약을 이것저것 사는 바람에 현재 꺼내 놓은 치약이 3개이다. 참으로 물건을 애정한다.
어젯밤에는 남편이 자기 모자를 찾으면서 모셔 두었던 내 등산 모자를 꺼내어 준다. 예전에 취미로 우리가 등산을 한참 했을 때 그가 사주었던 모자들이다. 등산할 때만 쓰겠다고 간직하다가 언젠가부터 등산을 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져버린 아이들이다. 그의 공간에서 벗어나 이제야 나에게 넘겨졌으니 실컷 빛을 보게 생겼다.
남편은 물건을 아끼는 주의, 나는 닳도록 편하게 쓰자는 주의이다.
우리 부부는 사고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맞춰 사는 것이 참 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