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을 걸으며

정신적 풍요를 꿈꾸며

by 문이


우리 동네에는 시민의 강을 따라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다. 나는 이곳을 발견하고는 태백산맥 줄기만큼이나 위대하게 여겼다. 뜨거운 태양이 이 동네를 강타하여 나를 좇아오기 전, 일찌감치 이 곳으로 산책을 나섰다.


나이가 드니 좋은 점이 이것이다. 여유 있는 삶.

넉넉한 살림을 위해 생활전선에 한 쪽 발도 들여놓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포기하면 이렇게 나의 숨어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다. 조금 덜먹고 삶을 즐기자는 것이 나의 요즘 지론이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므로. 물론 정신이 마지막을 다한 후는 그것도 의미 없겠지만,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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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니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맨발 걷기를 마치고 팔짱을 끼고 지나간다. 어머니가 앞이 안 보여 아들이 부축을 해 주는 듯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가 아들의 부축을 받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들이 아픈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자간의 사랑의 뒷모습에 나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다.

길 초입에 크록스 슬리퍼가 보인다. 한 슬리퍼에만 지비츠가 여러 개 붙어 있다. 아마도 두 신발의 주인은 모녀 사이 일 것 같다. 딸의 신발에만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을 보면.


나도 운동화를 벗어 돌 위에 올려놓고 양말은 벗어서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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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잡초를 뽑아 모아 놓았나 보다. 이곳을 아끼는 마음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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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에 지난번에 안 보이던 진분홍 꽃도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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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거친 질경이 군락 옆에 진분홍 립스틱을 바른 눈에 띄는 여자가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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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도 심어 놓았다. 봉숭아 꽃이 피면 또 다른 광경을 만들어 내겠다.


처음 걸어보는 황톳길, 양말에 갇혔던 발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흙바닥에 살이 닿자마자 그 차가움이 청량감으로 심장에 전해온다.

조금 걸으니 뾰족한 돌들에 내 무게가 부딪혀 아프다. 머리에 물동이 하나를 인 옛날 아낙처럼 저절로 살며시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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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도우미 물품들이 군데군데 하나씩 돌 위에 놓여 있다.

이건 마치 게임에서 단계를 오를 때마다 아이템이 하나씩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또는 보물 찾기할 때 띄엄띄엄 보물을 숨겨놓은 듯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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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맨발 걷기를 어싱(Earthing)-인체를 지구의 전기장과 연결하여 체내 전기적 균형을 회복시키는 이론-이라고도 한다.

어싱은 지구와의 교감이 직접적이다. 요즘 달리기가 유행인 것처럼 어싱도 유행이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해가고 있다.


이곳을 오래도록 이용한 한 여자분을 만났다. 그 여자와 나는 어느새 '우리'가 되어 황톳길 걷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천천히 걸었다.

돌 위에 물 조리개도 있다. 물을 뿌려 놓은 길은 차가움이 배가 되고 미끈거려서 조심해야 한다.

"이 길에 물은 왜 뿌리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물이 전기를 잘 통하게 해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서들 뿌려요. 여기는 바로 옆에 시냇물이 있어 그게 좋아요."

"이 물 조리개는 누가 가져다 놓은 거예요?"

"아마 여기 주민들이 가져다 놓았을걸요. 그리고 이 흙이 줄어들어 주민들이 시에 요구해서 몇 번 채워졌어요. 여기 꽃들이며 식물들도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다 심고 가꾸는 거예요. 풀도 뽑고 나뭇가지도 치우고 다 자발적으로 하는 거예요."

이 여자는 이 행위를 오래 즐긴 사람으로서 아는 것이 많다.

"맨발로 이 길을 걸으면 발바닥에 지압 효과가 있어서 혈액순환에 좋아요. 또 지구의 음전기가 몸속 활성산소의 양전기를 중화시켜 준대요. 우리가 늘 전자파에 노출되는 환경에 놓여 있으니 이곳을 이용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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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무다리 위에 서 있으면 잉어들은 어디선가 있다가 잽싸게 나에게로 다가온다.

시력이 참 좋다. 머리를 쳐들거나 돌리지 않고도 사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일까?

먹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것인지 공격적으로 떼를 지어 다가오니 살짝 위축이 된다.

아무것도 줄 게 없는 나는 그들을 좀 골려주고는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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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왜가리는 흔한 새다.

처음에 왜가리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그것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갈 때마다 만나는 친한 친구 같다.


저 회색 왜가리를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진다. 저리 오랫동안 안 움직이고 한 자세를 유지하다니.

그러더니 순식간에 풀숲으로 머리를 날려 먹잇감을 낚아챈다. '이것이 바로 사냥의 정석이로구나.'

너무 놀란 눈으로 지켜보니 잡은 물고기를 그냥 꿀꺽, 기다란 목이 울룩불룩 움직거리면서 물고기가 안에서 넘어가는 것이 상상이 된다. 처음 보는 이 광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세계에 긴장감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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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왜가리는 땅 위로도 올라왔다. 젖은 발을 말리는 것일까?

사람이 옆에 와도 급히 도망치지 않는다.

도시의 비둘기처럼 사람 친화적으로 변모했나 보다.

왜가리들은 풍부한 이곳 터전에서 사람들과 도시와 어우러져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자유롭게 너로 살아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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