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 가는 것

자유를 위해 경계에 서라, 최진석 교수 강의 후기

by 문이


많이 읽고 많이 배우기만 하면 좋은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읽고 배운 것에서 비롯된 나의 생각이며,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최진석 교수의 <자유를 위해 경계에 서라>라는 추천 강연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나는 차라리 진흙탕 속에서 스스로 즐기는 삶을 택하지 천하에 얽매이는 삶은 택하지 않겠다." 장자

장자는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왕의 지배력을 갖는 거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했네요.

"내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가 이롭다 하더라도 정강이에 난 털 한 올을 뽑지 않겠다." 양주

개인의 자발성에서 나온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는 뜻으로 양주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스스로가 원하고 선택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생명력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자와 양주가 같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대두되었던 냉전시대를 지나 이데올로기 사회가 막을 내리고 90년대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뚜렷해졌으며 현재 우리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스스로 여전히 사회의 통념이나 사상에 얽매여 아무런 생각 없이 인기에 편승하여 소비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심지어는 인공지능에게 글쓰기를 맡기고 그것을 자기 생각인양 그대로 올리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중이 가는 대로 그렇게 살았던 것도 같습니다.


그는 '나의 자발적 생명력, 나의 내적인 활동성이 내 삶을 끌고 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발적 생명력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운동의 경계에 선 사람이다. 한쪽의 이념을 선택한 사람은 그 이념에 속박된다."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 모순적인 세계에 늘 흔들리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운동의 경계에 선 사람인 듯합니다.


"누군가 쓴 책을 읽기만 하다 내가 걸어야 할 길, 쓰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배우기만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표현의 장애를 갖게 된다. 읽기와 쓰기, 배우기와 표현하기, 듣기와 말하기 사이에는 자기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은 거칠어지고 짐승의 눈빛을 회복한다."


"삶의 궁극적인 동력의 출처는 나를 표현하는 것"


"죽기 전에 해서는 안 될 두 가지

충고하기

남의 충고 듣기


죽기 전에 버려서는 안 될 두 가지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


그의 강의를 듣고,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잘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나의 사적인 일상을 적는 것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은 나를 들여다보고 내 생각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나로 사는 것, 나를 찾아가는 길, 그것이 저에게는 글쓰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자신으로 살아가게 하나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원해서 하는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주체적인 삶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하찮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도 스스로의 동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면 값지고 위대할 수 있습니다.


늘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흔들리고 움직이는, 경계에 선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생각에 속박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향해서.


매거진의 이전글황톳길을 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