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꽃 가게를 안 해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을 좋아하지만 매일 보면 지겨워질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의 꽃들을 감상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언니, 동생, 아버지랑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호수 공원 내에 있는 식물원에 갔습니다. 한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온실 식물원이더라고요. 잘 가꾸어 놓은 꽃과 나무들을 구경하고, 식물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지구를 후끈 달아오르게 해서, 땅 위를 밟고 있는 우리는 7월의 한 여름 날씨에 당황을 합니다.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후끈 다가오는 찜통 날씨를 얘기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죠.
"올해는 지구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땅 가까이 있는 다리가 더 뜨거워."
언니와 동생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얘기합니다.
"난 따뜻해서 좋은데."
추위를 많이 타는 저는 뜨거운 여름을 좋아합니다.
실내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몸은 뜨거운 바깥 날씨를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지난 초여름, 이 호수 공원에는 양귀비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키 큰 식물이 나란히 초록색 잎을 내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애들이 나리 꽃일 거라고 예상했고, 주황색 꽃을 피우면 장관이겠다고 상상을 했었죠. 그래서 밖으로 나오자 자연스레 그쪽으로 눈길이 갔어요.
그런데 멀리서 보니 태양 아래 하얀색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어요.
"우리 저기 가 볼래?"
"뜨거운데?" 하면서도 꽃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기꺼이 가 주었어요.
거기엔 하양, 노랑, 분홍 백합들의 무리들이 떼를 지어 있었어요.
"와, 이 색깔 봐. 너무 예쁘다!"
"으음, 이 향기 맡아 봐! 이 꽃은 향이 진짜 찐하고 좋다!"
우리는 각 종류의 꽃의 얼굴에 다가가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렸습니다. 어떤 것은 거의 향이 없고,
다른 것들은 조금 다른 향이 났어요. 노란 백합의 향이 제일 진하고 매혹적이었는데 코를 가까이 대자 알코올이 들어간 것처럼 향에 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줄기 바람에 백합꽃들의 향 입자가 스쳐 지나가고 순간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꽃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동생 얼굴을 보자 순간 놀랐습니다. 동생의 화장한 얼굴에 갈색 흠집이 칼자국처럼 몇 군데 나있는 거예요. 그러고는 웃음이 나서 깔깔거렸어요.
"쟤 얼굴 좀 봐!"
언니도 아버지도 따라 웃었습니다.
"아까 백합 향 맡다가 꽃가루가 묻었네."
"맞아, 내가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었는데 그때 묻었나 보네."
물티슈로 지우는데 잘 지워지지 않아요. 조금 있다가 언니가 말해요.
"아버지 코에도 묻었다. 하하"
아버지 코끝에도 살짝 묻어 있어요. 동생이 건넨 물티슈로 닦는데 오히려 노란 물을 들이더라구요.
"이게 잘 안 지워지네."
이날의 백합꽃은 향과 색과 우리의 웃음소리가 더해져 결코 떨어지지 않는 꽃가루처럼 기억 속에 착 붙어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 우리가 또 이곳에 온다면, 이 추억을 꺼내어 이야기하며 맛깔스럽게 음미할 것입니다.
그때 또 반갑게 맞이할 백합 꽃들을 기다리며 설렘으로 한 해를 지내야겠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 큰 꽃 만큼이나 큰 존재로 있어준 백합의 선물에 감사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