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속도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왜 성질을 내면서 말해?"
며칠 전 내가 했던 말을 남편이 똑같이 말해서 순간 놀랐다.
남편에게 언제 오냐고 전화했더니 그는 퇴근 후 자동차에서 뭐 좀 하고 있다며 곧 들어갈 테니 밥을 차려 놓으라고 했다. 어제까지 해 놓은 반찬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꺼내어 그릇에 덜어 놓고 찌개랑 밥을 데워 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난 요즘 나의 루틴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중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강의를 듣고 책도 좀 읽고 블로그 소통도 좀 하고 싶다. 아까운 나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고 패해 보는 것 같아 기다리게 하는 남편이 미워진다. 그런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아니, 왜 안 들어와?"
"알았어, 들어갈게."
"왜 이렇게 맨날 기다리게 하는 거야!" 했더니 그가 저 말을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남편이 나에게 말할 때 짜증스럽게 말을 해서 내가 참다가 저렇게 말을 했었다.
내가 했던 말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다니 '내가 그에게서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만 탓할 것이 아니라 나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자각했다. 살면서 남편이 나에게 잘못하는 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을 못 보고 살았던 것 같다.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서로가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가나 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닮아 가나보다.
그와 나의 속도는 많이 다르다.
그는 철저하고 꼼꼼하고 완벽주의 적인 성격이 강하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시간에 상관없이 완성을 봐야 한다. 시어머니의 일부를 닮았다.
나는 큰 것만 보며 대충대충 빨리 하려는 편이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원하는 속도를 따라 주지 않으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듣겠지'하고 큰 줄기만 대략 말하곤 한다. 성격이 급한 것은 아버지를 닮았고 직선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머니를 닮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다른 성격과 속도의 차이 때문에 말다툼을 많이 하셨다. 급한 아버지는 꼼지락대는 어머니를 기다려 주지 않고 나무라하셨고, 어머니는 자신의 속도대로 하며 잔소리를 하셨다.
우리 부부는 말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크다.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하고 자신의 감정까지도 덧붙인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는 그의 말이 한 편의 글이 되고, 감동을 받거나 감정 이입이 되어 재미까지 있다. 그가 글을 쓰면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글을 안 쓰고 말을 많이 한다. 내가 여유가 없을 때는 짧게 요약해서 말하라고 닦달을 한다. '바쁜 세상에 저렇게 길게 말하다니 비효율적이다.'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어떤 사항을 말할 때 건너뛰고 요약해서 말하니 내 상황과 마음이 잘 전달이 안 되고 무미건조하다. 다행인 것은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게 되고, 상황을 묘사하게 되고, 인용 부분을 흉내 내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말수가 늘고 재미있게 말하는 능력이 커지고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로를 자신의 잣대로만 바라보니 충돌이 생긴다.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그의 행동이 쓸데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배경과 경험이 그에게 작용해서 오늘의 그를 이루었겠지. 그러니 내가 알 수 없는 나름대로의 마땅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의 속도에 나의 속도를 맞추어야만 볼 수 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같은 속도로 나아갈 때 이해와 사랑이 찾아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