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었다. "뭐 먹을래요? 냉면? 국수? 밥?" 전화기에 대고 내가 물었다.
"비도 오고 하니 오늘은 김치전을 먹고 싶네. 풋고추 좀 총총 썰어 넣고 부쳐 봐. 라면은 콩나물 넣고 내가 끓일 테니 김치전만 부쳐 놔. 가면서 마트에 들러 콩나물이랑 막걸리 한 병 사갈게. 부침가루는 있어? 뭐 필요한 거는?"
남편의 이 주문에 내 머릿속은 갑자기 요리 계획 설계로 분주하다. '집에 야채가 많으니 야채 전도 부쳐 볼까?' 부침가루를 먼저 개어 놓고, 깻잎, 표고버섯, 배추, 가지 등을 손질하여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너무 과욕을 부렸구나 생각하는데 남편이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썰어 전을 부치는데 힘도 들고 시간도 걸려서 그냥 한 번에 다 넣어 크고 두껍게 부쳤다. 김치전은 실패다.
나의 요리가 끝나고 남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남편도 배가 고팠는지 라면에 냉동해 놓은 어묵까지 넣는다. 콩나물을 씻어서 주었다.
그가 대파를 씻는다.
"내가 씻어 줄게. 이리 줘."
"아니야, 내가 해. 저리 가."
손에 물이 묻은 김에 깨끗이 손질해 주고 싶어서 한 번 더 얘기했는데 자신이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크고 두툼한 손에 구부린 대파 한 움큼을 움켜쥐고 씻는다.
"내가 해 준다니까. 저 봐 누런 것도 안 떼내고 흙도 제대로 안 씻기겠네."
나의 말에 저리 가라며 짜증을 낸다.
남편은 자신이 요리할 때 내가 옆에서 훈수 두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요리는 내 취향에 안 맞아 잔소리를 하게 된다. '짜겠다, 물을 더 넣어라.', '너무 여러 가지 넣지 마라, 잡탕 된다.', '양이 많다, 조금만 해라.'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이 남편은 듣기 싫은가 보다. 결혼 생활 내내 이 장면은 자주 연출되었다.
남편은 왜 짜증을 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순간 그의 자율성을 빼앗은 건 아닐까? 그 역시 나처럼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성취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의도였지만, 내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하려 드니 그는 불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아마도 그냥 "고마워" 한 마디로 지나쳐도 되었을 것이다. 누런 대파 한두 줄기쯤은 삶에 큰 영향이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이 만들어가는 순간'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숙한 이해일 수 있다. 나는 남편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부엌에서 움직이고, 재료를 다루며, 맛을 내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서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라는걸,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비 오는 날 부엌에서 마주한 그 장면은, 단지 대파를 씻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테다. 서로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서로가 상처받지 않도록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주자. 비단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내가 노력해야 할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