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
8차선 도로 사거리를 통과하려면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서 있어야만 한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쉼 없이 차들이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바람처럼 휙휙 지나간다. 그 속도감이 적응이 안 되어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데 한 번은 세상이 정지한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 복잡한 사거리가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우연이었다. 신호가 떨어졌지만 이동하는 사람도 차도 없었던 우연. 늘 시끄러웠고, 출근하는 차들로 붐볐고, 엄청난 속도로 위압감마저 들었던 8차선 사거리였기에 이 고요함은 그에 대비되어 더욱 적막하게 다가왔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속도란 무엇인가?'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자동차는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느리다. 비행기 앞에서 느리다. 나는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빠르다. 개미 앞에서 빠르다
같은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는 서로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뒤따라 오던 차가 갑자기 '붕'하고 속도를 내어 앞의 차 옆에 와서 같은 속도로 맞춰가며 욕을 하던가 얘기를 하는 장면.
이렇듯 속도가 같아야만 소통이 이루어진다. 같은 속도로 나란히 마주해야 서로를 관찰할 수도 얘기할 수도 있다. (상대방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속도를 달리하면 된다. 상대방을 앞지르든가 그 보다 느리게 가든가. 물론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겠다.)
마음의 속도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달리기 경주에서 마음은 앞서는데 다리가 따라주지 앉아 앞으로 고꾸라지는 광경을 가끔 보았다. 나나 옆에 동료도 지국 체육대회 때 그런 적이 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속도와 몸의 속도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이랑 몸이랑 마주하며 나란히 나란히 함께 가야 한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속도를 맞춰 주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교사는 초보자의 서툼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엄마가 자녀를 키울 때도 자녀의 속도에서 멈춰 기다려줘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망각하고 내 속도에 빠져 다그칠 때가 있다.
마음의 속도가 다르면 우리는 서로를 놓친다. 빠르게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더 섬세하게 대하는 삶의 자세이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어 느리게 가거나 멈추는 용기, 그것이 사랑이다.
이 8차선 도로에 멈춰 서서 매일매일 저마다의 속도를 마주한다. 나의 삶의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자주 멈추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호기심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