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케데헌 이라고 알아? 거기 나오는 노래 좋더라." 아들에게 물었다.
"응, 근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뭔 줄 알아? 군가 중에 있어."
"멋있는 사나이! 진짜 사나이~~" 나의 흥얼거림에 아니라며 아들이 노래를 한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낮은 중저음의 울림과 가사가 어딘가 모르게 비장하고 구슬프게 들린다.
"그 노래 할아버지도 많이 불렀는데." 남편이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한다.
https://youtube.com/shorts/FtIlZX9QQOE?si=Fs_os08qWOLAxnKu
며칠 전 아들은 휴가를 나와서 우리와 함께 지내다 부대에 복귀했다. 그런데 이번 달 하나 남은 외출을 써야 한다며 우리에게 올 거냐고 물었고, 남편은 아들을 데리러 기꺼이 가 주었다.
"아니, 일주일 전에 봤는데 그냥 있지 또 외출이냐?" 내가 좀 야박한 듯 장난삼아 말했다.
"뭔 소리야, 있으면 무조건 써야지. 다들 그러는데." 아들의 이 말에 남편도 동조를 한다.
"그렇게 하루라도 부대에 있기 싫어?" 내가 말했다.
"이래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니까."
"왜, 거기가 어떤데?"
"감옥 같지."
"하지만 감옥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자유를 빼앗겨 봐."
사실 군 생활을 겪어보지 안은 나로서는 상상이 안된다. 그냥 아들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한다.
우리 부부는 1시간 정도 걸려 아들이 있는 부대에 아침 8시 30분에 도착했다.
아들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살짝 설렌다. 들판의 청량하고 확 트인 경치가 눈에 들어와 여행하는 느낌이다.
아들을 픽업해서 아침식사를 위해 부대 근처에 있는 중식당에 갔다. 아들을 보러 올 때마다 가는 곳이다. 아들은 늘 먹던 차돌박이 짬뽕을 시키고, 남편과 나는 잡채밥 하나를 시켜 나눠먹기로 하고, 식도락가 남편은 굳이 또 라조기 하나를 추가한다.
아들의 피부가 좋아졌다며, 남편의 얼굴살이 빠졌다며 서로가 달라진 점을 말해주니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미용실에 가 아들 머리를 깎았다. 아들은 다시 군인이 되었다.
"반장님이 머리 짧게 깎았다고 좋아하시겠네." 남편의 말에 "그치. 음, 그래, 좋아. 이러면서"
하며 반장님 흉내를 똑같이 내는 아들의 재간에 웃음이 터진다.
근처 유원지의 대형카페를 찾아갔다. 계곡에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고, 평상마다 닭, 오리 백숙이라 써 놓은 사인펜 글씨가 눈길을 끈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벗어나 좀 더 달리니 도로변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 멋진 풍경을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고, 들어가서 편안한 소파 자리를 맡고, 여름 더위에 삐져나온 땀을 식힌다.
음료와 빵을 즐기며 남편과 아들은 핸드폰으로 바둑대결을 한다. 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나 보다. 노트북으로 전자책을 읽고 있는데 아들이 바둑을 가르쳐 준단다.
"자, 엄마는 흑돌이야. 먼저 돌을 놔 봐."
"처음에 어디에다 놓는 게 유리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생각해야 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 그 앞 수까지 내다봐야 하는, 머리를 엄청 굴려야 하는 바둑의 세계가 놀라웠다.
"그래서 두 집을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해. 알았죠?"
난 내 집, 니 집 파악하기도 정신이 없다.
"사람들은 왜 집을 만들고 집을 뺏는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되었을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 세돌의 알파고와 대결에서 73승의 신의 한 수가 바로 이거였어. 돌이 이렇게 놓여있는 상황에서 이세돌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글쎄 여기다가 먼저 돌을 딱 놓아둔 거야. 정말 대단하지 않아?"
아들이 돌을 이동해가며 재현을 해주는데 바둑이라는 게임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휴, 너도 할아버지 피가 흐르는구나." 시아버지는 생전에 한때 바둑에 빠져 기원에 다니셨고 재산도 많이 잃어서 가족들이 맘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조훈현의 책 '고수의 생각법'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는데 바둑에 대해 알고 봤더라면 더 좋았겠다. 일본 바둑부터 이창훈, 이세돌에 대한 얘기까지 드라마틱 했던 기억. 영화 '승부'도 보고싶다.
그렇게 아들과의 추억을 또 한장 썼다. 아들은 오후 일정이 있어 역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시어머니를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