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밤 산책

시 쓰기

by 문이



900%EF%BC%BF20250807%EF%BC%BF212430.jpg?type=w966




엄마, 쓰르라미 우는 밤이에요


이제 그만 가요



아가, 이것만 마치고 가자


조금만 기다려라



엄마 배고파요


어서 집에 가요



그래, 여기 물고기가 많다


한 마리만 잡고 가자



귀뚜라미도 우네요


별이 보여요



그래, 다 했다.


이제 그만 가자.



밤 산책을 나갔어요. 아침에 보았던 왜가리가 며칠 안 보였는데 산책길 초입에 딱 서 있네요.


"오, 이제 밤에 오는 거니?"


왜가리는 대답도 않고 나에게 눈빛도 주지 않고 한곳만 응시한 채 서 있어요. 한참을 쳐다봐도 미동도 안 해서 심심해진 저는 제풀에 꺾여 가던 길을 갔어요.



산책길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옆 숲에서 쓰르라미,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해요. 낮에는 매미 소리로 시끄럽더니 밤에는 이 아이들이 떠들어댑니다.

여름 숲은 밤낮으로 생명력이 넘쳐납니다. 저도 이에 질세라 앞뒤로 팔을 뻗어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춰 빠르게 걷습니다.


아까 그 자리를 다시 왔는데 왜가리가 아직도 안 가고 있어요. 물고기를 한 마리 물었는지 그놈을 삼키느라 머리를 흔들고 조아릴 때마다 물고기 표면이 희끗희끗 빛을 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어요. 제가 어렸을 적 시골에 살았을 때 밭 일로 늘 바빴던 엄마. 엄마를 따라 밭에 가면 해가 저물어도 엄마는 밭일을 끝내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린 저는 빨리 집에 가자고 졸랐었죠. 저 왜가리도 그때의 엄마처럼 어둠 속에서도 먹잇감을 구하느라 애쓰고 있네요.


한여름 속, 기나긴 하루의 저녁은 생명들이 여전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시간입니다.



900%EF%BC%BF20250725%EF%BC%BF054634.jpg?type=w966



오늘 하루도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