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대기 후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버스의 조그만 창문 너머로 초록불이 켜지는 걸 확인했다. 일부 사람들은 버스의 앞쪽으로 가서 지나갔고 나는 뒤 쪽으로 갔다.
버스 꽁무니를 지나가는데 문득 버스가 후진하는 상상을 했다. 신경이 살짝 곤두선다. 끔찍한 장면에 도달하기 전, 생각을 차단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길 위에 선다. 위 상황에서처럼 버스의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하는 사소한 선택마저도 판단을 하고 움직인다.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버스 기사가 사람이 건너는 걸 못 보고 앞으로 움직이거나 뒤로 움직이거나 한다면 우리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판단과 선택이 잘 못된 것이 아니라 운명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찾아오는 불행.
그 불행이 두렵다고 멈춰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가야 할 곳이 있는 한 건너야만 한다.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움직여야 한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걸,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며.
가능한 한 주위를 살피고, 속도를 조절하고, 멈출 땐 멈추며, 내 몫의 책임을 다한다.
신호는 늘 바뀐다. 빨간 불도 언젠가는 초록불이 되고, 길을 막고 선 버스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중요한 건, 그 기다림과 불안을 견디며 나아가는 우리의 태도다.
건너야 할 길이 있다면, 잠시 망설이더라도 결국 한 걸음 내딛자.
삶은 그 한 걸음의 연속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