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신호등이 켜지고, 10차선 넓은 횡단보도를 걷는다. 모든 것이 숨죽인 적막한 도로 한복판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다. 사방의 차들이 내가 건너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무대 위에 선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객석에는 또 다른 내가 앉아 나를 바라본다.
이런 순간, 하이힐을 신은 듯 가슴을 펴고 허리를 세우며 당당하게 나아간다. 우회전을 기다리는 차들마저 나의 존재를 집중하는 듯하다. 나는 보폭을 넓히고, 한 걸음 한걸음 빠르고 힘차게 전진한다.
문득, 비틀즈의 '애비 로드' 앨범 자켓이 떠오른다. 그리고 최진석 교수의 목소리가 마음속에 울린다.
"건너가는 자는 질문을 하는 자입니다."
'나는 본능을 넘어서 불편한 질문들을 얼마나 자주 던지고 있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단순히 이 편에서 저편으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적인 깨달음, 정신적 확장의 세계로 건너가고 싶다.
그런 욕망은 발걸음을 더 빠르게, 그리고 더욱 단단하게 앞으로 내딛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