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소화가 안 되거나 몸이 찌푸둥할 땐 산책이 최고죠.
이제 수련은 작게 오므린 봉우리만 몇 개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귀엽고 앙증맞던 노란 꽃들은 내년 여름에나 보겠죠.
연꽃 무더기 근처는 보물 창고예요. 그래서 작은 물고기들이 늘 떼 지어 놀아요.
여름 기세만큼이나 무성했던 풀들을 베고 나서 잉어들이 안 보이더라구요. 겁먹고 다들 도망갔나 봐요. 오늘은 두 마리가 나타났어요. 한 마리는 저의 산책길 동무가 되어 나란히 흘러갔어요. 잉어는 유유히 헤엄쳐 가고, 저는 사뿐사뿐 맨발로 걸어갔지요.
작은 화단 밖으로 스러져 있는 꽃줄기. 멈추고 앉아서 자세히 봐야 예쁜 줄 알아요. 그냥 스쳐 지나가면 존재조차 몰라요.
워터코인과 호흡근이 다정해 보이죠? 워터코인 잎이 동글동글, 성격도 모나지 않게 주변과 잘 어울릴 듯해요.
예전에 키만 키우고 꽃을 안 피운다고 뭐라 했던 봉숭아 녀석들이 어느 날 뒤늦게 꽃 한 송이를 매달았고, 지금은 이렇게 풍성해졌답니다. 다 때가 있다고 나의 조급함을 나무라는 듯이요.
9월 중순 5시가 넘어서는 햇볕이 숲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줍니다. 노을빛으로 길, 물, 나무, 풀 등에 무늬를 그립니다.
빗자루도 빛의 포근함에 기대어 쉬고 있어요.
비포어와 애프터의 차이라니. 숲의 품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여자가 보입니다.
"나~의 사랑, 봉선아~야~~ 으흠으흠~~"
원문장
김훈, 자전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