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4시까지 잠을 못 잤다. 갱년기라 잠이 안 온 것은 아니다. 브런치 스토리 앱에서 놀다 보니 그랬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였다. 남편은 계속 나보고 "브랜드 작가님, 이것 좀 해 줘요." 하며 놀린다. 말끝마다 '브랜드 작가님, 브랜드 작가님' 한다.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할 일만 더 늘었다. 글을 올려야 하고, 댓글을 달아야 하고, 다른 작가들 글도 구경 다니다 맘에 드는 글을 만나면 라이킷을 눌러줘야 한다.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다. 앱에 배정된 내 구역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이 들어서다.
다른 작가들 방을 들어가 보면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도 많다. 출간도 했고, 작품도 몇 개씩 되고, 글도 많이 올렸다. 쇼윈도에 진열된 제품들처럼 갖가지 종류의 매력적인 글들이 다른 곳으로 못 가게 나의 시선을 잡아두기도 한다.
초반에는 내 소개만 달랑 해 놓고 다른 집 구경하느라 바빴다. 브런치 집주인은 처음이라 어떤 방들이 있고 어떤 도구들이 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집들은 어떻게 세팅했는지 유심히 살폈다. 주제도 소재도 프로필도 다양했다. 글이 되는 모든 것이 다 있는 세계였다.
눈동냥을 마치고 이제 내 집을 꾸밀 차례다. 다들 보니까 작품이라는 것이 하나 이상씩 있었다. 이것저것 클릭하다가 '작가의 서랍' 코너로 들어가니 '브런치 북'이라는 것이 있다. 궁금해서 보니 나의 책을 내가 제작해서 발간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발간된 책이 작품과 수량으로 표시되는 거였다. 이미 써 놓은 글들이 있다면 그 글들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이어서 요일을 정해 연재를 할 수도 있다.
난 갑자기 열정과 호기심이 생겨서 빨리 내 방에 '작품 1'이라는 표시를 넣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블로그에 써 놓은 글들을 갈래나 주제별로 분류해 보았다. 소설류도 있고, 에세이류도 있고, 서평, 단상, 시, 여행후기, 맛집 후기 등 참 다양하게도 썼다.
첫 작품이니 시험 삼아 열한 편의 시를 간단히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책 제목, 추천 대상, 책 소개 칸을 빠르게 작성하고 다음 단계로 가니 목차 구성이 있다. 챕터가 10개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시 하나하나를 챕터로 잡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주제별로 분류해서 몇 개의 챕터로 나눠야 했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저장이나 발행된 글이 있어야 하는데 저장작업도 하지 않고 시작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란 사람, 일단 부딪혀 보는 스타일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생각해 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블로그의 글들을 복사해서 일일이 저장을 하고 다시 목차를 쓰려고 들어가려는데 아까 썼던 책 제목, 추천 대상, 책 소개가 싹 날아가고 없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서 이전과 비슷하게 썼다. 그다음 저장된 글들을 끌어다가 목차를 구성했다.
완성을 하고 북으로 들어가 보니 복사해서 넣은 글들의 줄 간격이 다 붙어있다. 북에서는 수정이 안된다. 북에 넣은 열한 편의 시들이 발행된 글로 한편씩 올라와 있어서 거기서 수정을 하니 북에서도 수정이 되었다.
드디어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책을 봤더니 시는 30편 정도를 책 한 권에 넣었다. 급하게 완성된 나의 첫 책은 시가 열한 편만 실린 십일 분 짜리 아주 얇은 책이었다. 성미 급한 티가 팍팍 난다.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이제 나도 브런치 북 만드는 노하우를 안다. 비록 짧은 책이지만 내가 만든 책이라 만족감이 넘친다. 밤이 지나고 어느덧 새벽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