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불러온 난장판

by 문이

명주 시어머니는 여든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작년 사 월까지 활동을 활발히 했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혼자서 전철을 타고 의정부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도 가고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에 물건을 사러도 다녔다. 시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이 년 동안 제사도 지내주고 홀로 살기에 잘 적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해 오 월부터 몸이 안 좋다며 거동도 잘 안 하고 점점 나가는 걸 못하더니 기억력도 떨어져서 집에만 있었다. 명주 시동생은 칠 월쯤 되어 어머니를 치매 병원에 모시고 갔고 그때 치매 판정을 받았다. 심장도 안 좋아서 시동생 집에서 가까운 보훈병원에도 정기적으로 모시고 다녔다.


그 해 십일월 어느 날 아침에 시어머니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명주야, 내가 왜 이러냐, 숨을 못 쉬겄다. 약 좀 사다 줘라."

명주는 병원에 전화했지만 응급실이 아니면 당장 검사를 할 수 없었다. 망설이며 시간을 보냈는데 다행히 어머니는 괜찮아졌다.

시동생이 다음날 다니던 병원에 예약돼 있던 검사일을 앞당겨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명주 부부가 병원을 모시고 다니기로 해서 명주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보훈 병원에서는 심장이 많이 안 좋다고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순천향대학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해 응급실로 갔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입원을 시키려는데 이십사 시간 간병인이 있어야 한단다. 간병비도 부담되고 그렇다고 그렇게 붙어 있을 시간이 되는 사람도 없었다. 명주는 난감해서 심장 병원에 다니는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가 다니는 병원은 통합 간병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병원에 전화하여 다음 날 아침 일찍 검사 예약을 잡았다. 오늘은 명주 집에서 자고 내일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명주 아들은 대학생이다. 다행히 오늘 학교를 안 간다고 한다. 명주는 집에서 홈스쿨을 운영한다. 오후에는 수업을 해야 해서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가 없다.

"정우야, 엄마 수업하는 동안 할머니하고 카페에 갈래? 심심하니까 카페 가서 할머니랑 이야기도 하고 음료도 마시고 해."

"응, 알겠어."


수업을 하는데 아들에게서 카톡과 전화가 자꾸 온다.

"엄마, 할머니가 카페 가기 싫으시다는데 어떻게 해?"

"그럼 밖에서 바람 좀 쐬다 들어와."


잠시 후

"엄마, 할머니가 우리 집 들어가기 싫으시대. 답답하다고."

"그럼 밖에 좀 있다가 카페에 다시 가자고 해 봐"


계속 아들의 전화가 온다. 명주는 수업하랴 전화받으랴 정신이 없다.

"엄마, 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으시대"

"안되지 이, 집에 들어가자고 해봐."

"아휴, 싫다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럼, 택시 불러서 계산 니가 하고 기사님에게 부탁 좀 해볼래? 엄마 바쁘니까 니가 알아서 좀 해 봐."


그리고 또 전화가 온다.

"엄마, 할머니가 막상 혼자서 집에 가려니까 겁이 난대, 할머니가 결정을 못 내리고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힘들어. 엄마 아빠는 나한테만 맡겨놓고 어쩌라는 거야?"

"그래, 니가 고생한다. 그치만 엄마 아빠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잖아. 오늘만 좀 고생해라. 좀 있다가 할머니 보고 들어가자고 해봐"


그 둘은 얼마 있다가 들어왔고 아들이 질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가 소변이 급하다고 글쎄 공원에서 바지 내리고 그냥 싸셨어. 사람들도 지나가는데 챙피해 죽는 줄 알았다고."



저녁이 되어 남편이 퇴근을 했다. 명주네 식구들은 예기치 않은 낮 시간의 일들로 녹초가 되어있었다. 시어머니는 기억을 하는지 어떤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 배달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남편은 술을 마시며 아들에게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아빠도 오늘 회사일로 스트레스받고 힘든데 계속 전화하고. 니가 할머니 보기 싫어서 집에 보낼려고 한 거 아니야."

이 말에 아들은 폭발을 해서 남편에게 대들 기세다. 오후 내내 고생한 자신의 고생을 몰라주니 서운했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셋 다 고생한 날이야. 그중에 정우가 가장 고생이 많았지. 잘 알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얘기를 하면 어떡해." 남편의 시선은 아이 같은 표정의 시어머니에게로 향하고 명주 가족은 각자의 힘들었던 하루와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힘든 저녁시간을 보내야 했다. 치매가 불러온 난장판이었다.


그날 밤 치매는 지랄 맞은 얼굴로 명주에게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서서히 온갖 황당한 일들을 가져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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