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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의 미학

by 문이

나는 주부다. 살면서 설거지를 몇 번이나 했을까. 아마 세수를 한 횟수보다 많을 것이다.

설거지는 내게 늘 귀찮은 의무였다. 언젠가부터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은’ 강의를 틀어놓는다. 그냥 빨리 헤치워야 하는 일, 시간을 갉아먹는 하잘것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개수대는 오늘도 난장판이다. 어제 미뤄둔 그릇들과 아침에 나온 것들이 한데 뒤엉켜,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다. 맨 밑바닥에는 돼지갈비 양념이 하얗게 눌어붙은 후라이팬이 버티고 있고, 그 위로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젓가락, 집게, 플라스틱 통이 층층이 쌓였다. 구석에는 꼴 사납게 김치 양념 찌꺼기와 동치미 무, 던져놓은 바나나 껍질이 널브러져 있다. 기름 낀 갈색 국물은 보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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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이, 줄여서 문이 입니다. 삶을 아름다운 글 무늬로 보여주고싶은 무늬, 아니 문이입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뒤늦게 문학의 맛을 알았습니다.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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