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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 사이

by 문이


적당한 시간, 적당한 크기의 공원. 아파트와 병원, 관청과 상가 건물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작은 광장과 정원이 어우러져 있다. 여름과 가을이 서로 손을 스친 순간, 정원의 색은 누렇게 물든다. 여름의 열정이 미생물의 숨결을 타고 뽀글뽀글 발효되듯, 빛바랜 햇살 속에서 소리를 내며 스며 나온다.


한때 찬란하게 햇볕 아래 윤슬처럼 반짝였던 하얀 수국은, 이제 할머니가 오래 입던 삼베옷처럼 누런 갈색으로 바래 간다. 때때로 멀리 이웃 나라에서 겨울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실어 오는 듯, 여름 공기에 섞인 차가운 공기가 서늘한 바람과 함께 눅진한 땀을 식혀 준다. 흐린 하늘 아래, 안개 낀 듯 뿌연 허공 앞에서 분홍빛 배롱나무 꽃잎이 멀리서 눈길을 붙든다. 구름은 어둡게 깔리고, 공기는 점점 무거워지며, 분홍빛 웃음 위에도 회색빛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린이집 아이들 한 무리가 손에 손을 맞잡고, 선생님 양편으로 나란히 걸으며 재잘거린다. 서로 얽힌 손은 마치 보이지 않는, 열 수 없는 자물쇠 같다. 촉각을 느낄 기회조차 없이, 입만 자유로운 아이들은 통제된 사회 속에서 자기를 잃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를 배워 가는 것일까.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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