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이 책은 박완서 작가님이 70년대 쓰신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여기 실린 책들은 그 시절 이야기들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스토리가 흥미 있고 표현력에 감동합니다.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고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묘사와 비유가 어찌나 들어맞는지 마음속에 울림을 지나 감동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이 작품은 1972년 8월 '현대 문학'에 실린 단편소설로, 장애인 문제, 이민에 대한 선입견, 가족이 간첩으로 파견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받는 감시 등 사회의 억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억압이 주인공에게는 틀니가 쑤시는 육체적 고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소설에는 1970년대 서울이 배경으로 '미아 삼거리', '배나물골' 등 성북구의 옛 지명이 등장한다.
성북마을아카이브 중
설희는 장애인이고 설희 아버지는 화가입니다. 중학교 행사에 참석하는데 진흙탕에 빠진 연이 엄마인 나를 설희 엄마가 도와줍니다.
설희 엄마는 장애가 있는 딸을 강하게 키우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딸과 연이 엄마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틀니가 천근의 무게로 턱뼈를 눌러 꼭 턱이 떨어지고 말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턱을 받쳐도 보고, 슬슬 주물러도 보고, 더위 먹은 짐승처럼 턱을 축 늘어뜨려 입을 헤벌리고 침을 흘려도 보았으나, 턱뼈가 부서질 듯한 동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몸의 온갖 신경이 턱뼈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전신에 퍼진 듯, 중압감에 수반한 동통은 턱뼈에서 목구멍으로, 귓속으로 골로 퍼져 내 두상은 완전히 틀니의 횡포가 지배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중
치통이나 입안의 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어찌나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는지 그 통증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설희 엄마를 공항에 바래다주고 오는 길입니다. 경제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설희 엄마가 부럽기만 합니다. 내 팔자가 더 편하다고 코웃음을 치며 부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문제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고향인 북한에서 함께 살다가 행방불명이 된 오빠인 듯합니다. 남한 사회는 북한 체제에 물든 가족이 나타나면 간첩이니 신고를 하라며 감시합니다. 나와 어머니는 그 중압감에 시달리며 감시 속에 갇혀 지냅니다.
그녀는 찾아온 남자가 오빠라면 혈육을 부정하고 신고를 결심합니다.
잠시 잊었던 틀니의 고통이 다시 밀려듭니다. 틀니를 빼낸 상태인데도 말이죠. 그 고통의 원인은 현재 그녀의 상황입니다.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 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 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이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더것이다.
...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 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 달싹 못하고 놓여진 채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중
사람마다 무거운 틀니 같은 것이 하나쯤 있을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이든 경제적인 문제든 자아 성취, 이웃과의 불화 등 다양한 상황에 놓여있겠죠. 이 글을 읽다 보면 나의 고통도 들여다보게 되고 문제의 원인도 생각해 보며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 공감과 인정을 지나 위로에까지 다다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