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잊은 줄 알았다.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다 돼 가니 말이다. 세월 따라 엄마도 그렇게 잊혀 간다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생각이 나곤 한다.
어두운 밤, 산책길 도랑 옆을 지날 때도 그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둡고 차가운 냇물 속에 잠긴 가로등과 풀, 나무들이 흔들리며 나를 따라온다. 물속 세상을 그윽이 바라보면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긴다.
물속에는 분명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곳에 잠겨있는 가로등 불빛도 눈이 부시게 물 위 세상을 비춘다.
'어느 세상이 진짜일까?'
물 위 윤슬의 일렁임을 주시하는 순간,
문득 엄마의 얼굴이 살아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딸 왔느냐,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 한 켠 숨겨둔 그리움이 일어나 눈가가 젖었다.
엄마의 다독거림에 따뜻한 위로를 받고, 밤산책길이 가벼워졌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결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불러낼 수 있는 곳에서 내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일상의 바쁨을 잠시 내려놓으면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