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시어머니
나는 방금이라는 두 글자에 예민하다. 그런데 하루 두 번씩 방금이라는 단어와 만나야 한다. 방금이라는 말에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방금이라는 말이 이렇게 미운 적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치매 초기이다. 그래서 약 먹는 것을 스스로 잘 챙기지 못한다. 치매 환자에게 약은 유일한 동아줄이다. 치료제는 못 되지만 병의 속도를 늦추어 준다. 예전에 그 중요한 약을 한 달까지도 밀려 담당 의사에게 한 소리 들은 적이 있다. 보호자가 옆에서 챙기지 못하면 전화라도 해서 약을 잘 먹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후로 내가 하루 두 번 전화를 해서 약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전에 심장약, 저녁에 치매약을 놓치지 않도록 알람을 맞춰 놓고 전화를 드린다. 두 개의 약통에는 각각 커다란 글씨로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을 적어 놓고 전화를 해서 무슨 요일 약을 드셔야 하는지 알려드린다. 어머니는 약 드시라고 하면 방금 먹었다고 늘 같은 대답을 하셨다. 그리고 주말에 가서 약통을 확인하면 그대로 있었다. 그 거짓말로 인해 또 약이 밀렸다.
남편은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약을 잘 좀 드시라고 어머니께 애원까지 했지만 치매는 늘 승리했다. 치매는 그녀에게 게으름을 가져다주고 약 먹는 것까지도 귀찮아 하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심장이 안 좋아 늘 숨이 차다. 그래서 거의 누워 지낸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다 깨다 하는 상황. 그 상황에 약을 먹기위해 식탁까지 일어나서 가기가 귀찮으니 일단 먹었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정말 당신의 기억에 먹은 걸로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는 전화 통화 종료하는 법을 늘 잊어버려서 케이스 뚜껑만 닫으신다. 전화기가 꺼진 줄 알고 혼자 구시렁대는 말이 들려올 때도 있다. 한 번은 내가 좀 짜증스러워서 "어머니, 왜 맨날 약을 안 드셨는데 방금 먹었다는 말부터 내뱉으세요. 왜 안 드셨는데 먹었다고 하는 거예요, 의사가 빠트리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요" 속에 있는 말들을 내뱉었다.
잠시 후 "그렇게 걱정되면 지가 와서 좀 챙기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못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나무라는 소리. 우리 집에서 어머니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차편도 복잡하다는 걸 잊은 듯한 그 말에, 치매가 만든 어머니의 모습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와 이제는 방금 먹었다는 말에 속지 않고 무슨 요일 거 드셨냐고 다시 여쭈어본다.
"가만있어 봐라."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숨차라." 이런 말도 들리고 약통 뚜껑 여는 소리도 들린다.
"수요일 거 비었는데? 오늘이 몇요일이냐?"
"오늘 목요일 이예요. 그럼 안 드신 거잖아요. 지금 바로 목요일 오전 약 드시면 돼요." 약 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확인하고 난 종료 버튼을 누른다.
지금도 '방금 먹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내 몸은 반응을 한다. 누군가는 그럼 질문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오늘 몇요일 약 드셨어요?"
"방금 먹었는데 오늘이 몇 요일이냐?" 질문을 바꿔도 일단은 방금 먹은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돌아올 답을 뻔히 알면서 난 늘 별 생각 없이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한다. '방금' 한 일이라면 아무리 치매라도 기억이 나야 한다. 방금이니까. 나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 '방금'이라는 말만 빼도 괜찮을 것 같다. 그 말이 들어가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 같고 속이는 거 같아서 싫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 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