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신발을 걱정하며 멈춰 서 있는 당신에게

산책길에 만난 사유

by 문이

작은 도랑이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맞은 편으로 옮겨 가는 다리가 중간 쯤에 있습니다. 다리를 지나쳐 한참을 걸었기에 건너편으로 가려면 다시 뒤돌아서 그만큼을 다시 가야합니다.

'도랑을 훌쩍 뛰어 건널수 있다면 좋겠네, 도랑 가운데에 놓인 돌들을 짚고 뛸 수 있을까?' 머릿 속으로 가늠해 보았지만 물에 빠질수 밖에 없는 거리였어요.

저 건너편에는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가득한데, 발걸음은 좀처럼 옮겨지지 않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거나, 아니면 얕은 물길을 그대로 가로질러야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각합니다. '굳이 왜? 신발이 젖으면 번거롭잖아. 빨아서 말려야 하고 축축하면 불쾌하잖아.'


우리가 도랑을 건너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단순히 못해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발이 젖었을 때 겪게 될 뒷감당을 너무나 잘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뽀송한 발을 유지하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이것은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아주 합리적인 계산이자 삶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 앞의 이 도랑은, 젖은 신발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건너갈 가치가 있는 곳인가?"

만약 그 건너편에 내가 정말로 원하는 풍경이 있다면, 신발이 젖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내가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이 됩니다. 반대로 굳이 젖을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문제는 우리가 '건너가고 싶은 마음'과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 발생합니다. 소중한 것을 얻고 싶으면서도, 단 한 방울의 물조차 튀기기 싫어하는 모순된 마음 말입니다. 그런 마음은 결국 목적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합리적인 핑계들만 늘어놓게 만듭니다.


삶의 모든 도랑을 다 뛰어넘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건너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젖은 신발의 축축함이 두려워 늘 돌아가는 길만 택한다면, 우리는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 앞에서도 똑같은 망설임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먼저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결심했다면, 신발이 젖는 것쯤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 축축한 발걸음이야말로, 내가 간절히 원하던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테니까요.


오늘 당신 앞의 도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인가요, 아니면 젖은 신발을 감수하고서라도 건너고 싶은 소중한 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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