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명주가 글을 쓴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많은 이웃들이 이야깃거리를 물어다 준다. 명주는 새끼 제비가 된 듯 어미들이 물어다 준 먹이를 기쁘게 잘 받아먹는다. 오늘은 미자 언니의 국민학교 때 친구인 금숙언니의 얘기를 덥석 받아 물었다.
지리산 두메산골 깊숙한 곳에 내려앉은 포도송이 닮은 마을. 거기엔 사방으로 또 작은 포도송이 같은 동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금숙이 사는 요골 동네는 아래 마을에서도 2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고갯마루에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식들에게 담배나 술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였다. 특히 농촌에서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쁜 부모의 일을 돕거나 잔심부름 등을 해야 했다.
금숙의 아버지는 매일 막걸리를 마신다. 오늘도 금숙이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킨다.
"금숙아, 니가 아랫동네에 쪼까 댕겨와야 쓰겄다잉. 요 주전자 갖고가서 막걸리 좀 한 되 사 오니라."
밖으로 나온 금숙은 양은 주전자를 흔들며 투덜댄다.
"아부지는 맨날 나만시킨당께."
돌멩이 하나를 친구 삼아 굴리면서 비탈진 길을 내려간다. 여름이라 지천에 초록 생명들이 무성하다. 굴리던 돌이 물이 찬 논으로 풍덩 빠진다. 하루가 다르게 벼들의 키가 자라 있다.
아랫동네 가게에 다다르자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고, 금숙이 니가 거그서 여까지 심부름 왔냐잉. 안 흘리게 잘 들고 가라잉." 하면서 아주머니는 요구르트 같은 막걸리를 황금빛 찌그러진 주전자에 한가득 담아준다.
아직도 해가 산등성이 근처도 못 갔다. 뜨거운 햇살에 금숙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와 구릿빛 볼 옆을 타고 흐른다.
"아이, 집까지 언제 간다냐. 글고 이것은 또 왜 이리 무겁당가."
금숙은 계곡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만든 작은 도랑가 그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한다. 주전자 주둥이로 흘러나온 막걸리에 혀를 가져다 대고 핥아본다.
"오메, 달짝지근헌 것이 맛이 좋구마잉."
금숙은 갈증도 나고 배도 출출하다. 이번에는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셔본다.
"이야, 술맛이 솔찬허네이, 쪼께만 더 마셔야겠구마."
금숙은 한 조금만 마신다는 게 연달아 세 모금을 더 마신다. 영혼이 채워지는 듯하다. 비탈진 길을 따라 반쯤 올라왔는데 약간 취기가 돈다. 기분이 날아가는 거 같다.
"요거이 술맛이구나. 쪼께 더 마신다고 티 안 나것제."
한 모금씩 홀짝이며 남은 길을 걸어간다. 흥이 오르고 노래가 절로 나오고 걷는 것인지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게 집 마당에 들어섰다.
"아부지, 여그 술 사 왔소."
아버지는 술 주전자를 받아 들며 딸의 안색을 살피고 기겁을 한다.
"니 얼굴이 왜 이렇게 벌겋냐? 술 마셨냐?"
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던 아버지는 남아 있는 술을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진다. 금숙을 무섭게 쏘아본다.
"아니, 요년아. 아부지 술을 니가 다 마셔 뿌렸냐? 내 마실 술을 니가 다 마셔, 응?"
노발대발 화가 난 아버지는 손이 올라가고 금숙은 위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해 달아난다.
명주는 금숙언니 얘기가 너무 맛있다.
보통 아버지 같으면 술에 취한 딸 걱정을 하고 미안해할 텐데 자기 술 없어진 것 때문에 화를 냈다니 좀 상식 밖의 아버지 얘기가 흥미 있게 들렸다. 명주도 어렸을 때 아버지 술 심부름을 했지만 마셔본 적은 없는데 금숙 언니는 좀 대차다는 생각이 든다.
미자 언니의 말에 의하면 그 덕분인지 금숙 언니는 지금도 술을 잘 마신다고 한다. 아마도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안주 삼아 그때의 술맛을 떠올리며 맛있게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