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작가가 마흔에 쓴 첫 소설 <나목>을 읽고 나니 그녀의 마지막 작품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된 작품이 이 <노란집>이다.
읽을수록 잔잔하게 빠져드는 나를 보며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행복했다. 따뜻함과 위로와 평안을 느꼈다. 칠십 대에 바라본 이 천년 대가 시작된 세상. 삶의 연륜에서 오는 비판과 지혜 또한 담겨있다.
<그들만의 사랑법>에 삽화가 정겹다.
남편과 아내의 소중함과 서로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 산 부부는 서로의 특성을 제일 잘 알고 그에 맞추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짝일 것이다. 그렇게 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나를 알리고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애써야겠다.
우월한 사람일수록 열등감이 강할 수 있겠구나 싶다.
어떤 것이 진짜 행복한 것일까?
남의 시선, 열등감, 비교 이런 것들은 내가 아닌 타인이 중심에 있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나의 본질에 맞춰가는 삶을 살 때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작가는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런 것들을 일깨워 준다.
"자연이 놀랍고 아름다운 까닭은 목련이 쑥잎을 깔보지 않고, 도토리나무가 밤나무한테 주눅 들지 않고, 오직 타고난 천성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지 않을까."
"겨울 동안 살구나무는 시커멓고 무뚝뚝했다. 옆에 있는 다른 나무나 숲 속의 겨울나무들과 구별이 안 됐다. 그러나 봄 되면 그 나무에서 살구꽃이 피고 열매 맺고 그리고 여름 되면 그의 무성한 이파리고 그늘을 만들어줄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나무는 처음부터 살구나무였고 해마다 그 나무에선 살구꽃만 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들도 생명 있는 것들은 타고난 사명대로 살다가 죽고 자기 죽음을 통해 거듭난다."
그녀는 칠십의 노인이 되어서도 글쓰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녀의 말대로 '감각이 굳어지거나 감수성이 진부해지지 않으려고, 노화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였다. '자신이 겪고 깊이 느낀 것 밖에는 잘 쓰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작가이기에 그녀의 글은 진실되고 공감이 되고 매력적이다.
"집착이 괴로움을 낳고 마음의 병이 된다는 것은 그 집착하는 바가 비록 새우젓 꽁다리 같은 하찮은 거라 해도 변함없는 진리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 변하는 게 신기하다. 안 좋아하던 음식들을 먹게 되고 좋아하기까지 한다. 작가는 '흰밥에 새우 육젓이 그리워 먹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다'라고 했다. 입맛도 어릴 적 어머니 손맛으로 유턴하나 보다. 자연스레 빵, 인스턴트식품이 멀어지고, 된장국에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는 작가처럼 나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런 U턴 현상과 함께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점점 시들해지다가 이제는 짐스러워서 맨날 장만하기보다는 없앨 궁리부터 하게 된다." 116쪽
요즘 내 주변의 친구들 이야기 같다. 그녀들은 예전만큼 옷도 사지 않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정리했다며 홀가분해한다. 나도 물건보다는 자연과 자신의 내면에 관심이 간다.
"삶의 유턴을 지나 내려가는 길.
무거운 짐을 버리고 가볍게 가자."
구리 아치울 마을의 노란 집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두 모녀의 환한 웃음이 맘에 들어서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