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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사과도 깎을 줄 알아요.

에세이

by 문이


세 자매가 카페에 갔습니다.
동생이 함께 근무하는 학교의 동료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라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선생님이 어느 날 20대 젊은 신입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고 합니다.
"쌤, 나 이제 사과도 깎을 줄 알아요. 몇 번 깎아 보니까 쉽던걸요?" 뿌듯한 표정으로 한 신입 선생님이 자랑하듯 말했답니다.
"응, 그래? 잘했어. 그럼 이제 배를 깎아 봐. 배는 크기가 훨씬 커서 사과보다 더 고난도거든."

상대방 선생님이 응원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네요.







언니와 나는 이 말을 듣고 좀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니, 요즘 애들은 얼마나 집에서 일을 안 시키고 공부만 시켰으면 사과도 못 깎아서 그걸 자랑해? 정말 너무하다."
"그러게,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엄마 대신 밥도 하고 국도 끓였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예전 시골에 살 때 언니는 4학년 때 처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서 처음으로 밥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체 여행 간 부모님이 늦은 시간이 되어도 안 오셔서 집에 오면 배고프실까 봐 밥을 미리 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반응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동생의 다음 이야기에 그 신입 선생님들의 대화가 납득이 되긴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쌤이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었대. 피아니스트는 손이 생명이니까 손을 보호하느라 부모님이 칼 쓰는 일을 안 시킨 거였어."
그 선생님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교단에 섰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은 뒤늦게 자기 손으로 과일 깎기를 배우고 시도하며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제 손으로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추 하나, 방울토마토 한 개도 자기 손으로 심고 길러내서 먹는 맛은 다르니까요.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맛일 테죠.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거예요. 산다는 것 자체가 과정이지 완성이 아니니까요.
자녀가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 못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가운데서 스스로 해 보게 해 주세요.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태어난 이상 세상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애를 씁니다. 부모는 자녀의 자립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실패의 기회를 주어야겠죠.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도 못 담그게 하면 안 되겠습니다. 구더기도 생겨봐야 그다음에 좋은 장도 담글 수 있고 그걸로 먹고 살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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