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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요일

에세이

by 문이


아침 일찍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치매 병원을 갔다. 전화하면 내려오시라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병원에 가야 하냐며 엄청 귀찮아하시는 목소리다. 막상 어머니를 만나니 환하게 웃으신다. 보라색 얇은 잠바가 춥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늦는다고 설레발을 쳤던 나를 무색하게 20분이나 병원에 일찍 도착했다. 지난번 병원에 간 이후로 3개월이 지나고 약이 떨어졌는데 2주나 딜레이가 되었다. 남편이 회사 때문에 토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 한 주는 의사가 휴진이었고 한 주는 남편이 일이 있었고.


남편은 차를 주차할 때가 없다고 이따 전화하면 태우러 오기로 하고 어머니와 나를 내려주고 갔다. 여전히 진료실 앞 젊은 간호사는 무뚝뚝했다. 늘 말하기 귀찮아서 마지못해 말하는 말투다. 한 번 더 물어보면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3개월마다 만나는 의사는 아직도 나를 어머니의 딸로 착각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만 둘이라고 말했더니 기록이 딸로 되어 있어서 며느리와 딸이 번갈아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달라진 게 없는지 경로당은 자주 가시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내가 전화해서 약 드셨냐고 하면 약을 안 드셔놓고 늘 방금 먹었다고 한다고 고자질을 했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3개월 후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때는 검사도 여러 가지 해야 해서 1시간 정도 걸린단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 나왔다.




1510997.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남편은 12시에 치과 예약이 있다. 그리고 또 회사에 가야 한단다. 아주 바쁘신 몸이다. 말도 없이 나주 곰탕집으로 들어가 차를 세운다. 아점으로 설렁탕과 곰탕을 먹는데 치과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 어머니를 댁에 모셔다드리고 빠른 운전으로 집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나를 내려놓고 뛰어간다.


집에 들어왔는데 졸음이 쏟아지고 머리가 아프다. 몸이 무겁고 눈도 아프고 계속 잠이 쏟아져 일어날 수가 없다. 그냥 되는대로 나를 놓아버렸더니 세 시간이나 잤다. 신기하게도 머리도 안 아프고 약간 몽롱한데 몸이 개운하다. 그래서 이렇게 글도 쓴다. 뭘 써야 할지 헤매다가 그냥 일기처럼 오전의 일들을 기록해 본다.


아들이 일주일 휴가를 받아 어제 집에 왔다. 아들도 바쁘신 몸이다. 어제 오전에 들어와서 남편이 배달시켜 준 치킨, 햄버거를 먹고는 (내가 집밥 좀 해주려 했는데 기회를 안 준다.)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을 갔다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저녁에 들어왔다. 원하는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자동차 운전면허가 필요해서 휴가 기간을 이용해 따고 들어가야 한단다.


어젯밤에는 남편과 아들이 양꼬치를 먹으러 가자는데 기름진 게 당기 지도 않고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둘이서 갔다 오라고 했다. 생맥주에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나 보다. (이러다 나 왕따 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 나만 에너지가 부족한가 보다. 그래서 이렇게 집에 편하게 혼자 앉아서 노트북에 주절거리나 보다.) 아들은 아침에 운전면허 학원에 들렀다가 오늘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청춘이다.


1515520.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어제 남편과 아들이 얼마나 오글거리는 대화를 나눴는지 아침 운전 길에 남편에게 들었다.


[어제 전에 갔던 양꼬치 집을 찾아가는데 00가 이쪽에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있더라고, 그래서 "야! 너는 어떻게 그걸 기억했냐? 기억력 좋네." 했더니


"아빠도 기억력 손상 안 되게 조심하세요," 그러더라고.


그리고 그 가게에 들어갔더니 웬 나이 든 조선족 분이 보이는 거야. 그 주인이 편하게 앉아서 주문해 주시라고 하고 갔는데 00가 속삭이면서 "아빠 여기가 아닌 거 같아. 어떡하지?"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주인한테 그랬지.


"죄송한데 우리 일행이 기다리는 곳이 여기가 아니었네요. 여기 말고 저쪽인데 우리가 잘 못 들어왔나 봐요. 저쪽에서 이미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린다고 하니 다음에 올게요."


그러고 나왔지. 내가 그 가게 주인 자존심 상하지 않게 예의 갖춰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거야. 00가 그러더라고.


"아빠는 어쩌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순발력이 좋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있지?"


그리고 좀 더 가니까 우리가 찾던 그 집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 주인 남자한테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 괜찮다고, 그 사람도 우리 같은 동포라 서로 다 알고 지내고, 다 이해할 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먹고 있는데 오이 요리를 서비스로 주더라고. 진짜 맛있더라, 오이를 두들겨서 약간 부신 다음 식초 등으로 새콤달콤 양념을 한 게 맛이 좋았어."]



둘이 좋은 시간을 가졌다니 나도 흐뭇하다.


오이 탕탕이? 먹으러 나도 갈 걸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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