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꽃들이 제각기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4월이다.
목련은 앙드레 김이 만든 듯한 하얀색의 풍성한 드레스를 입었다.
수선화는 여섯 장의 노란색 꽃잎을 펼쳐놓고 가운데 더 진한 노랑으로 나팔 모양 관을 달아 톤온톤의 맛을 살렸다.
튤립은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듯한 원색의 항아리치마를 입고 귀여움을 뽐낸다.
벚꽃은 새까맣고 커다란 나무줄기에 아기 볼같이 불그레한 연하고 작은 꽃잎들을 촘촘히 피워냈다.
이렇듯 봄꽃들은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향기도 제각각이다. 똑같은 모습이 없어서, 개성과 독특함을 확실히 어필해서, 나는 봄이면 여기저기 눈 돌리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자연에서 만나는 다양한 모습들을 사람에게서도 발견하고 싶어진다. 신은 사람도 모두 다르게 만드셨다. 피부색, 기질, 목소리, 생김새 등, 하물며 지문도 눈동자도 같은 것이 없다. 생각해보니 꽃들만 다양한 모습인 게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현대사회는 창의성이 있어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을 살려 창의성을 발휘한 모습이 바로 개성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 따라 하기 바쁜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심한 편이라 생각한다. 오랜 농경사회와 유교문화에서 온 집단성이 강한 나라라서 일까?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재난 시에 하나로 똘똘 뭉쳐 금 모으기 운동을 했고, 코로나 시기에 온 국민이 마스크 쓰기를 잘해서 해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광장에 모여 한뜻을 모은 촛불 집회도 떠오른다.)
한때 겨울이면 검정 롱패딩의 학생들이 거리에 흔히 보였던 적이 있다. 다 같이 유행을 좇는 시절에 다른 색 패딩을 입은 학생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도로 위 자동차들의 색깔은 검정, 흰색, 회색, 은색이거나 그 근처의 색이 대부분이다.
대치동 학원가는 의대를 꿈꾸는 학생들로 붐빈다. 근래에는 영어 유치원(실제로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영 어학원)까지 등장하여 이목을 끌었다.
맛집, 카페, 여행지 등은 방송을 타고 집중적으로 쏠린다. 대세를 탔을 때 한몫 잡느라 주인들은 사력을 다하고 옆집은 파리를 날리며 구경만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잠재력의 4분의 3을 상실한다고 쇼펜하우어가 말했다고 한다. 지난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정해준 목표를 따라가기 바빴다. 저 사람이 가진 것은 나도 가지려 애썼고 저 사람이 이룬 것은 나도 이루느라 급급했다. 대세를 따르는 통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어떤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내면을 살피지 못했다.
봄꽃에게서 배운다. 대세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피어나 나만의 개성을 뽐내고 지는 것이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그렇게 했을 때 자연 속에 함께 더 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봄꽃들이 내게 말한다. 네 맘대로 피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