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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꽃병이 예술이야

에세이

by 문이


우리 집에는 남편이 신혼 때 산 꽃병이 하나 있어요. 신혼살림을 처음으로 차리고 남편은 '우리 집'이라는 애착을 이 꽃병에 담아냈습니다.


그 시절 집을 장식할 몇 가지 화분을 사러 꽃집에 갔는데 남편이 이 화병을 발견하고 좀 비싸지만 사자고 했었죠. 저도 색감이나 재질, 무늬가 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맘에 든 것은 평범하지 않은 생김새였어요. 일부러 몇 군데를 찌그려 푹 패인 곳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독특함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찌그러졌는데 예쁘다니요. 온전한 것만 예쁘다는 그 당시 저의편견을 깨버린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사는 내내 여기에 양귀비꽃이나 갈대 같은 조화들을 사다 꽂거나 아니면 유리 찬장에 장식품으로 넣어 두거나 했습니다. 지금은 물을 담아 몬스테라를 키운답니다. 처음에 잎 한두 개로 시작했던 작은 것들이 쑥쑥 자라 풍성해졌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화병은 질리지가 않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이 드네요. 이것이 예술의 힘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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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님 책을 읽고 있어요. 이 책에 아래 내용들이 담겨 있어 생각을 더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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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이쁘기만 한데...> 이철수



논에 있는 벼를 소중히 여기고 잡초를 없애야 할 못된 놈으로 취급하는 것은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었더라고요. 잡초도 식물이고 하나의 존재로 본다면 충분히 예쁠 수 있죠. 여담이지만 저의 학창 시절 별명이 잡초였답니다. 근데 이렇게 예쁘잖아요, 하하, 농담입니다.


앤디 워홀이 "이 캠벨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생활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다"라고 했답니다. 액자에 담으면 주변에 널린 하찮은 것도 의미가 생기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변기도 전시장에 세워 놓으면 예술로 다가와 많은 생각들을 낳게 하잖아요. 결국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상상의 액자를 씌어서 바라보는 눈인 거 같아요. 관점을 달리하여 새롭게 바라보는 눈에서 창의력이 발산되는 거죠.



길을 가는데 보도에 핀 작은 민들레가 눈에 들어옵니다. 머릿속에서 액자 씌우기 작업이 시작됩니다. 저 좁은 틈에서 노랗게 올라온 민들레 꽃이 말을 걸어옵니다. 하찮게 보일 수 있는 나를 돌아봐 줘서 고맙다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는 거 같아요.


SE-21fed5b6-167c-11f0-b0b7-b3567643b6b9.jpg?type=w966 액자에 넣으면 예술이야.


SE-221543e8-167c-11f0-b0b7-2bb468279e40.jpg?type=w966 민들레와 나사


민들레와 나사도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식물과 쇠, 자연과 인공이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자아내어 낯선 광경을 연출합니다. 민들레가 자연을 잃어버린 애처로운 도시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렇게 액자를 씌우고, 나만의 의미를 담고,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보는 하루를 산다면 지루하지 않은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광경을 액자에 담아 사색의 문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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