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바람에
이 골짝
저 골짝
난리 났네
제정신 못 차리겠네
아유 꽃년 꽃놈들!
- 고은 -
마지막 문장에서 웃음이 '큭' 났어요. 요즘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있는 봄꽃들을 보며 제가 느끼는 감정을 대변해 주어서요. 얼마나 예쁘면 거친 말이 튀어나올까요? 어렸을 적 시골에 살 때 이웃 할머니도 그랬거든요. "아이고 요년!, 요 가시내!" 하면서 예뻐죽겠다는 듯이 아프도록 볼을 잡아당겼어요.
마음속 울림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한정된 언어로는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감당이 안될 때,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욕으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 욕에는 감정이 실려있어요. 아주 밉다거나 아주 좋다거나 하는 힘센 감정이죠.
어제 막내 동생네 집들이로 아버지를 모시고 세 자매가 뒷좌석에 앉아서 갔어요. 서쪽에서 동쪽으로 서울의 도로를 뚫고 가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산마다 가로수마다 희끗희끗 꽃세상이더라고요. 우리나라에 벚꽃이 이렇게나 많았나요? 곳곳에서 흰색, 연분홍색 꽃무더기가 은은한 빛을 마구 뿜어내요. 짙은 분홍색 진달래는 산기슭마다 무리를 지어 있어요. 가까이서 멀리서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쳐요. 우리는 달리는 차 안에서 '우와, 저기 좀 봐'하면서 그들의 부름에 감탄을 쏟아냈죠. 동생 집에 도착해 근처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거기도 개울가를 따라 벚꽃 천지예요. 힘찬 바람에 꽃잎들이 함박눈으로 변해서 온 세상을 그림으로 만들어버려요.
달콤한 빛깔로
재잘거리는
너의 부름
아, 시끄럽다 지랄 맞다
눈부신 낮에 도달하면
사라져 버릴 너
입 다물어라
덧없다
-문이-
저렇게 기쁨을 주는 벚꽃도 금방 사라져 버리고, 우리 인생의 사랑이나 기쁨의 순간, 젊음도 사라질 걸 알아요. 영원한 것은 없죠. 돌고 도는 것이 자연의 속성이라. 그 속성만이 영원한 듯합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또 다른 기쁨이 찾아올 걸 알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아서 순간들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이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감정적으로 길게 사는 방법이 있어요. 지루하지 않게 사는 거죠. 더 많이 움직여서 경험하고 감동하고 사색해서 그 시간을 마음의 창고에 쌓아두는 겁니다. 누군가는 순간순간을 온전히 씹어먹으라는 표현을 하더군요.
짧은 이 계절이 지나면
지루하고, 덥고, 추운 기나긴 계절이 올 텐데
그때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요
찬란했던 기억으로 살아야죠
꼭꼭 씹어 먹었던 순간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러니 열심히 저축해 둘 일입니다
한가하게 낮잠 잘 시간이 없어요
들로 산으로 구하러 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