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오 가까이 되어 비가 멎었다. 태양은 구름을 가르고 그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어 그 빛살로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씻고 닦고 어루만졌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
그리스인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지중해의 문학을 설명하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온 이 부분들을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 기적이라고 깨우쳐 줘요.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이라고. 그 자연의 많은 이야기들을 카잔차키스가 발견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답니다.
"별이 빛나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그리스인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행복은 이렇듯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요즘 어떤 때 행복했는지를요. 그리고 행복의 순간들을 일기처럼 써보았습니다.
나는 행복했다.
남편이 생일날 보내준 꽃 한 다발을 일주일 내내 오가며 바라볼 때,
아침에 식탁에 서서 쓰디쓴 머위나물을 쌈장에 찍어 먹으며, '쓴데 왜 맛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강한 개성의 매력을 풍기는 머위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두 번 세 번 그 맛을 음미하며 감탄하게 될 때,
미나리 전을 먹을 때도 좋지만 그것을 만들 때, 부침가루를 묽게 개어 키 작고 검붉은 밭미나리 한 소쿠리를 몽땅 넣고 프라이팬에 얇게 펴서 전을 부칠 때,
편한 동료와 식사 후 우연히 찾은 카페의 라테가 너무 맛있고,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그것을 되새기며 그냥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어느 한 모녀가 화단에 푸른 측백나무 잎을 쓰다듬으며 감촉을 느끼고 지나간 후, 바람에 사라락 흔들리는 잎사귀의 속삭임을 듣는 순간,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과 감정을 놓칠까 봐 코 평수를 넓히고 들숨을 들이키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쓸 때,
그럴 때 나는 행복했다.
소박하고 단순한 순간들이었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촉만 있으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행복의 순간들은 여기저기 돌처럼 널려있었네요. 그것을 줍지 못하고 발로 차고 다녔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행복의 돌들을 주어서 관찰해 보아요. 그 돌들 하나하나가 의미 있게 다가오면 그것이 기적이 되고 행복이 될 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순간이 행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