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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구가 꺼진다

에세이

by 문이

시어머니 댁 작은방의 문을 여는 순간, 어머니의 시간이 이삿짐처럼 쌓여 있었다.


작년 초여름, 어머니의 상태는 더 안 좋았다. 머릿속 전구가 더 자주 꺼졌고, 과거의 어느 시기들을 띄엄띄엄 헤매고 계셨다.


"어머니, 웬 살림살이들을 이렇게 싸 놓으셨어요?"


작은방에 가보니 냄비, 프라이팬, 이불, 화장품을 비롯한 잡동사니들이 커다란 비닐봉지랑 보자기에 가지런히 쌓여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전국을 이사 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때는 포장이사라는 것이 없었기에 손수 짐을 싸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을 테다. 이사를 대비해 잘 쓰지 않은 물건은 아예 풀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짐 싸는 데는 선수 셨을 어머니. 어머니는 어제저녁 그 시절 어디쯤을 헤매다 오셨나 보다.


"글쎄 내가 어제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 보다. 이사를 가는 줄 알고 죄다 저렇게 싸서 작은방에 놔뒀지 뭐냐. 내가 왜 이러냐, 정신 차려야지 큰일이다."


1510551.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어머니는 이미 병원 의사가 치매라고 판정을 내렸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신 건지, 인정을 안 하는 건지 저렇게 말씀을 하시곤 한다.


"이제 난 김치는 못 담근다. 느그가 해서 먹어라."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김치 못 담근 지가 일 년이 넘었다. 남편과 내가 늘 사다 드렸는데 그것도 기억을 못 하시고 자식들한테 김치 담가 주시던 몇 해 전으로 또 혼자 가 계신다.



나는 소망한다. 기억은 희미해질 수 있어도 가족이 함께 웃고 울던 그 방의 전구만은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기를. 그 빛 아래에서,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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