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 위에서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산책하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자꾸 의미를 가지고 찾아와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다. 그 글에 담긴 내용들과 나의 경험과 생각들이 교차한다.
'책도 여행도 생각도 나의 진짜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려' 책 속의 이 말이 나의 느린 산책에 이유가 되어준다.
관찰과 사유를 통해 친구가 되느라 자꾸만 발걸음이 멈춰진다.
온몸이 촉수인 사람들이 있다.
시인, 소설가, 화가, 조각가( 지난번 소개한 조각가 론 뮤익은 새에게 먹이를 주며 긴 시간 매의 눈으로 새를 관찰을 했다.), 예술가들.
풍부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어서 온몸이 촉수인 그들을 흉내 내어 본다. ㅎㅎ
며칠째 육교 위를 걷는데 오늘은 유난히 철골과 유리에 눈이 간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떤 것이 되고 싶으면, 결국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철골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유리는? 그 성분들만 선택하여 뽑아냈기 때문이다.
유리가 되려면 해안이나 사막의 모래에서 규사만을 뽑아 불속에서 녹여내야 한다.
철도 마찬가지다.
광산 속 복잡한 혼합물 속에서, 철이란 한 가지 성분만을 뽑아내고, 끓이고, 다듬었기에 단단한 기둥이 되고, 간판이 되고, 육교 위에 놓일 수 있었다.
되기 위해선 버려야 하고,
보이기 위해선 가려야 하며,
이루기 위해선 집중해야 한다.
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저 바라만 보지 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재료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야 한다.
나는 육교 위에서 철과 유리를 진짜 친구로 사귀어본다.
이 친구들은 내 삶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어떤 것은 투명하고, 어떤 것은 단단하다.
그 모두가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이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