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료에게
그제 사랑하는 동료랑 한 시간 통화했다.
고민이 많았다. 일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고. 결혼도 고민이라고.
근데 마음이 자꾸 무거워진다고 했다.
그 마음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감사한 일이다.
근데 그래서 주변에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커리어. 항상 비교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잠재적으로 늘 있었다.
남들 다 하는 건 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하나 뒤쳐지기 싫었다. 그래서 자꾸 채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옷을 샀다. 가방을 샀다. 해커톤도 나가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일도 많이 했다. 비워본 적이 없었다. 계속 쌓기만 했다.
그러다 산티아고를 걸었다. 배낭 하나 메고 한 달을 걸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걷고, 먹고, 자고. 그게 전부였다.
근데 이상하게 부족한 게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문제는 어깨였다. 배낭 무게 때문에 발에 물집이 계속 생겼다. 그래서 매일 물건을 하나씩 버렸다.
도착하는 날엔 우비도 버렸다. 무릎 보호대도 버렸다.
진짜 필요한 것만 남았다.
그때 알았다. 나는 필요 없는 것들로 나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구나.
비우는 연습을 시작했다.
옷장 옷은 예전의 1/4이다. 남편은 아직도 많다고 한다.
화장대도 없다. 소파도 없다. 티비도 없다. 4식구가 작은 집에 산다. 아기랑 강아지랑.
없어서 불편한 거 없다. 있어서 좋은 것도 없더라. 있어야 할 것만 있으면 된다.
물건 사기 전에 진짜 필요한지 고민한다. 있는 걸 또 사면 끔찍이 싫다. 못 찾아서 또 사는 것도 싫다.
어차피 다 불타서 없어질 것들이다.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나도 이렇게 말하면서 예쁜 거 좋은 거 비싼 거 다 좋아한다. 욕심 없는 척 안 한다. 근데 진짜 내가 이걸 가져서 얼마만큼 효용이 있는지, 마음을 채워주는지 생각해보고 결정한다.
그래도 예전에 산 운동화들은 아직 못 버렸다. 나도 완벽하진 않다.
남들과 비교하면 끝이 없다. 위를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나를 먼저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게 먼저다.
남 시선이 자꾸 신경 쓰인다면, 나를 거슬리게 한다면, 잠시 멀어져도 된다. 내가 편하고 행복한 환경으로 주변을 꾸리자.
나는 계속 변화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주변이 바뀌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다.
결혼은 괜찮다. 둘이 맞춰가면 된다.
근데 아기가 생기면 달라진다. 시간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직장다니며 아이를 키우면 매 순간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예전엔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지금은 안다. 못 한다.
뭘 하고 뭘 안 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가치관이 크게 재설정됐다.
돈을 왜 버는가. 돈 벌려고 사는가. 살려고 돈 버는가.
돈은 삶에 뭘 주는가. 안정? 자유? 선택지?
일을 왜 하는가. 돈? 성장? 인정? 재미?
예전엔 생각 안 했다. 그냥 재밌으니까, 또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시간이 유한해지니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바뀌어도 괜찮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게 사람이지 않는가.
중요한 건, 그런 거 없이 그냥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무거워진다. 지친다.
어떤 가치관으로 살 건지 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워낼 기준이 생긴다.
누군가의 만족이 아니라 내 만족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내 선택에 대해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이 정한 성인의 기준을 10년 넘게 지나버린 성인이다. 모든 결정 권한도 책임도 내가 갖겠다는 뜻이다.
남 눈치 보면서 선택하면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고 책임질 각오를 하고 살자.
그럼 명쾌해지고 가벼워진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물건도, 관계도, 일도. 다 마찬가지다. 비워야 보인다.
지금 무겁다면, 자꾸 불안하다면, 한번 비워보자.